내가 강의하러 나가는 일도 별로 없지만, 남의 강의를 들으러 가는 일은 더더욱 없다. 어제 프레시안 집들이 갔다가 김종철 교수의 "포스트-후쿠지마" 강연을 들으며 20여 년 전 강의의 어려움을 절실하게 겪던 일이 떠올랐다.
1989년 가을이었던가, 토요일 점심때였었던 것 같다. 교수식당이 매우 한산했던 기억으로 봐서. 이웃 과의 K 교수와 마주쳐 함께 식사를 하던 중에 K 교수가 불쑥 물었다. "김 선생 생각에 어때요? 강의 내용을 충실히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도 노력이 따로 필요한 거라고 생각하세요?"
당시 40대 중반이던 K 교수는 나보다 대여섯 살 연상이었지만, 품성이 순박한 분인데다가 아담한 체격에 대단한 동안이어서, 한참 어울려 얘기하다 보면 내 동생처럼 느껴지는 분이었다. 그래서 엉뚱한 질문을 받고도 그냥 마음속에 궁금증이 떠오르신 건가보다 생각했을 뿐, 특별한 배경이 있는 질문이라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교수생활을 한 해 두 해 해 오면서 처음에 비해 '효과적인 강의'를 위한 노력의 필요를 더 크게 느낀다고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
식사가 끝난 뒤 K 교수가 자청해서 내 방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 문제에 왜 이렇게 집착하실까,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평소에 어떤 주제라도 함께 놓고 이야기하던 식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몇 달 후 그분이 교수직을 사퇴한 소식을 들으며 그 날 나누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알고 보니 그분이 강의를 재미없게 한다는 이유로 일부 학생들의 배척운동 대상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강의 재미없게 하시리라는 것은 들어 보지 않아도 그분 고지식하고 순박한 성품으로 미루어 가히 추측이 되는 일이다. 그러나 내용을 충실히 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신다는 사실은 학생들도 다 아는 것이기 때문에 배척까지 당할 대상은 아니었다. 다른 이유로 다른 교수 한 사람에 대한 배척운동이 일어나자 그 교수를 지지하는 학생들이 '물타기' 작전으로 K 교수를 물고늘어진 것이었다.
일부 학생들의 배척, 그것도 속셈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억지 배척 때문에 교수직을 그만둔다. 참 한심한 일이다. 아무리 성품이 그런 분이라도, 이건 너무했다. 화까지 났다.
그러다가 몇 달 전 나누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배척운동 때문에 고민이 깊을 때 내 의견을 물었던 것이다. 동료들 중에 학문에 대한 근본주의 성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던 나라면 강의의 본질을 중시하고 포장을 경시하는 자기 취향에 공감해 줄 것으로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까지도 포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을 드렸으니, 교수 직업을 계속하는 데 자신감을 잃으시는 쪽으로 조금이라도 떠밀어드린 것은 아닐까.
한 학기 뒤에 이번에는 내가 학교를 떠나면서 그 일이 많이 생각났다. 교수직을 떠난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그러나 떠나는 쪽으로 기분이 잡히는 데는 그 생각이 많이 작용했다.
그보다 10년 전 교수직을 시작할 때 나는 강의 수준에 강하게 집착했다. 내가 상정한 학생들의 정상적 능력과 노력 수준에 미달하는 강의는 강의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을 많이 괴롭힐수록 교수 노릇 잘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학점도 엄청 짰다. 아니, 짰다기보다 편차를 크게 둔 것인데, 그것이 실질적으로는 대다수 학생에게 짜게 느껴질 것이었다.
교수질을 4년 한 뒤 1년 휴직하고 영국 등지에서 지내보고 돌아온 뒤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공부라는 것을 사명감으로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본인이 좋아서 하는 짓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강의 태도도 이에 따라 바뀌었다. 학생들에게 많은 지식과 깊은 생각을 전해주는 것보다 지식과 생각에 대한 자세를 갖추도록 도와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K 교수가 내 의견을 물을 때 나는 어떻게 하면 강의를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 고민 때문에 원래 생각보다도 포장을 중시하는 쪽으로 치우친 의견을 말씀드렸던 것 같다. 그 의견이 K 교수의 퇴직 결심을 조금이라도 거들어드린 것이었다면, 그분 자신을 위해 좋은 일이었을까? 모르겠다.
나는 강의를 싫어한다. 가르치는 일이라면 글로 하는 편이 좋다. 폭력성을 싫어하는 성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폭력이란 것이 필요한 면도 있다고 믿는 보수주의자이지만 체질은 어쩔 수 없다. 서서 떠들고 앉아서 듣는 상태에 피차 묶여 있는다는 것 자체가 싫다. 글로 써주면 읽는 사람이 편할 때 읽고 싶은 만큼 읽을 수 있지 않은가.
김종철 교수 강의가 10시를 넘기는 것을 보고 일어나 나오며 그 생각이 났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저녁식사도 제대로 못한 사람들을 붙잡고 두 시간이 넘게 떠들어야 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나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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