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22. 01:16
1985년 상반기 반년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지낼 때 (내 첫 서양생활이었고, 그 후 그보다 더 긴 기간 서양에서 지낸 일이 없다.) 파리에 몇 번 다니게 되었고, 그 후 연구주제를 근세동서교섭사로 잡으면서 틈만 나면 파리에 다니게 되었다. 교수직을 그만둘 때까지 5년간 방학만 하면 파리에 가다시피 해서 파리 체류가 총 1년 가까이 되었던 것 같다.
파리에 가서 지내도 학부 때 중급불어까지 들은 데서 더 발전할 의욕은 없었다. 프랑스 연구자들도 나와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친구들은 다 영어를 했으니까. 나랑 함께 있을 때는 모두 영어로 얘기했다. 부득이하게 프랑스어로 얘기할 필요가 있을 때는 내게 양해를 구하곤 했다.
그렇게 얘기하다가 내가 짤막한 말이라도 프랑스어를 쓰면 다들 좋아했다. 말 배우는 어린애가 모처럼 말 같은 말 하는 것 들은 것처럼. 너댓 단어가 넘어가는 문장다운 문장이 나오면 "Quatre mots!", "Six mots!" 하며 신통해 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따금씩 말재롱을 떨던 중에 한 차례 함께 있던 친구들이 일제히 뒤집어진 것이 제목의 말이었다.
계명대학에 객원교수로 있었던 클레망텡 교수가 무슨 말끝에 계명대 시절 생각이 났는지 내게 물었다. "어른, ('Orun' is my first name.) 대구 있을 때 다른 교수들이 모두 너를 별난(different) 사람으로 취급하던 생각이 난다. 왜 그런 거지? 왜 네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들 생각한 거지?"
결국 제풀에 교수직 그만둬서 끝까지 별난 꼴 보이고 만 셈이었지만, 내가 생각해도 참 별나게 굴며 지냈다. 그렇게 별나게 굴면서 10년이나 버틴 게 대견하다. 정말 계명대 동료 교수들 너그러웠다. '진짜 학문'의 기준은 나만 아는 것처럼 잘난 척하는 넘을 그만큼 봐주다니...
교수직을 막 그만두고 파리 와 있는 판에 교수 시절 질문을 받으니 일순 착잡했다. 그래서 얼렁뚱땅 대답한 게 제목의 말이었다. "Parce que j'etait superieur." 같이 있던 친구들, 모두 배꼽을 쥐었다. 꼭 저다운 식의 대답이라고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고 20년 지나 돌아보면 어처구니 없는 오기요, 치기였다. 대한민국에서 학문 한다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절감하면서 학문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살리고 지키는 분들께 경의를 느낀다. 그 시절 같으면 "왜 조렇게밖에 못하나?" 하고 못마땅해 하던 분들에게도.
그러나 어찌 생각하면 그런 오기와 치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세만큼이라도 갖출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원래 마음이 가난한 이들은 그런 오기 없이도 학자의 본분을 지킬 능력이 있을지 몰라도 나처럼 게으르고 경박한 사람이 원만하게 처신해서는 공부다운 공부를 얼마나 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그런 면에서 가장 깊은 경의를 품는 분의 하나가 위에 말한 클레망텡 교수다. 30대 초반에 계명대에서 불어 가르치며 지낼 때가 그분에게 참 어려운 때였다. 인도 연구자인 그가 인도에서 필드워크를 계속할 여건도 안 되고 프랑스에 돌아가 학자로 행세할 형편도 안 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한국에 와 지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인도학 연구를 혼자 계속했고, 위의 대화를 나눌 무렵에는 인도학 연구자로 프랑스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있었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공부,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여건에 관계없이 지키고 키워나간 클레망텡 교수, 내가 본 가장 진지한 학자의 모습 중 하나다. 그에 비하면 교수직을 떠나 20년 지내 온 내 여건 정도는 호시뺑뺑이다.
<프레시안> 생기고 "페리스코프 " 시작할 때까지도 그 친구랑 메일을 주고 받고 있어서 튕겨주는 얘기를 곧잘 칼럼에 써먹곤 했는데... 곡절 많은 인생 중에 그 친구랑 메일마저 끊긴 게 어찌된 일이었는지... '서양'과의 직접 접촉을 마지막까지 이어준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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