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23. 11:41
어제 아침 어머니 모습을 병원에 다녀온 아내에게 전해듣고 마음을 굳혔다. "오늘 저녁에는 어떤 수술 받으시는 건지 어머니께 똑바로 말씀드려야지." 하고.
그저께 저녁 가 뵌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았다. 정신은 맑으신데 대화에 전혀 흥미가 없으신 모습. 눈감고 주무시는 척하지만 편안히 잠드신 게 아니라 생각에 잠기신 것 같았다. 조금만 자극이 있으면 바로 눈을 뜨셨다가 금세 도로 감으시고...
어떤 수술이 닥쳐 있는지 알고 계신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 동안 내가 가 있을 때도 의사나 간호사가 용태에 관한 이야기를 바로 곁에서 하고, 어머니는 주무시거나 무슨 얘긴지 관심도 없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것으로 대개 보인다. 내가 없을 때 의사와 간호사들끼리 얘기할 때도 그러실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 시치미 실력을 생각하면 전부 또는 대충 알아들으시면서도 못 들은 체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께 저녁부터 움츠러드신 것이 수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그저께 아침 아내가 모시고 있을 때는 몇 차례나 밑도 끝도 없이 "빵꾸가 났어, 빵꾸가." 하시고, 무엇이 빵꾸났나 여쭈니 "내 인생이 빵꾸났어." 하시더라는 것도 '불구'가 되시는 것을 뜻한 것이었을까?
절단 수술 가능성을 떠올리면서부터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수술인지 미리 말씀드릴 수 있을까? 의식이 웬만큼 회복되신 뒤에 수술 결정을 내리면서는 구체적인 문제가 되었다.
말씀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나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부득이한 일이라고 결정을 내리면서도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께 대놓고 "어머니, 이제 다리 하나 없이 살아보세요." 말씀드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한편으로는, 미리 알지 못하시는 채로 수술을 받으셔도 결과를 충분히 받아들이실 수 있으리라는 낙관으로 자기최면을 걸고도 싶었다. 그래서 눈치만 보며 그 말씀을 드리지 않은 채로 어제까지 지내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저렇게 정신이 맑으신데, 아마 무슨 일인지 대충 알아채고 계실 텐데, 당신 일을 당신 스스로 이해하시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았다.
그렇게 비장한 마음을 먹고 어제저녁 병실에 들어섰다. 들어서며 보니 담당 간호사가 어머니께 엎어질 듯이 바짝 붙어 있었다. 담당 간호사는 자주 바뀌는 것 같았는데 이번 김 간호사는 며칠째 계속 돌봐드리고 있고, 어머니께 홀딱 빠져 있다. 용모는 세련되었는데 성품은 아주 순박한 것 같다. 어머니의 활기와 매력을 거침없이 좋아해서 급한 일 없는 틈에는 어머니 살펴드리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같다. 대화만이 아니라 쓸고 만지고... 어머니가 한 번씩 손을 뻗쳐 얼굴을 만져주면 막 넘어간다.
김 선생의 정을 흠뻑 받고 있던 참이라서 그런지 어머니 마음이 밝았다. 대화에 적극적이었다. 아직 기력이 충분치 못해서 말씀이 똑똑치 못한 편인데, 내키지 않을 때는 못 알아듣고 다시 여쭤도 그냥 무시해 버리신다. 그런데 어제는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성의를 많이 보이셨다.
김 선생이 다른 볼일 보러 간 뒤 얘기를 꺼냈다. "어머니, 수술 하나 받으셔야 하는데, 어떤 수술인지 아세요?" 어머니 얼굴이 한 순간에 울상으로 찌푸려졌다. 알고 계신 것이었다.
더 똑바로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이 아직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작 이런 정도 말씀밖에 드릴 수 없었다. "어머니, 그 동안 힘든 것 잘 견뎌내신 것이 어머니 뱃속에 감사의 마음이 가득해서였던 것 같아요. 어떤 일이라도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실 것 같아요." "어머니는 제가 참을성이 있다고 하시지만, 요새는 제가 어머니께 참을성을 배우고 있어요. 진짜 참을성은 감사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가봐요."
내가 드리는 말씀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 마음이 벌써 풀릴 만큼 풀려 있었던 것 같다. 찌푸러졌던 얼굴이 차츰 펴지면서 누구를 향해서인지 모르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말씀을 하고 있는데 김 선생이 와서 혈압측정기를 팔에 감으니까 뭐라고 하셨다. 너무 부드럽게 건네는 말씀이라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약간의 시차 뒤에 이해가 되었다. "좀 더 따뜻하면 좋겠다." 팔에 감기는 촉감이 차가우시다는 뜻을 이해하는 데 또 1-2초 시간이 걸렸다. 김 선생이 마음에 드니까 소리를 지르지 않으시는 것이다. 요양원 시절 어머니랑 놀던 가락으로 바로 돌아갔다. "어머니, 차가우시면 '으, 차거!' 소리를 지르셔야지, 그렇게 얌전하게 속삭이시면 어떻게 알아들어요?" 어머니 입꼬리가 모처럼 귓가에 가 붙으셨다.
그저께와 전혀 다른 모드였다. "주먹으로 될 일을 왜 말로 하냐?" 하는 말도 있지만, 소리질러도 될 일을 조곤조곤 말씀하신다. 한 번은 눈에 장난기를 약간 띠고 불쑥 무슨 말씀을 하시는데, 너무 다정스럽고 부드러운 말씨라서 역시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1-2초 시차 후에 뜻을 파악했다. "에이, 빌어먹을~ 모조리 뒤집어엎어 버릴까?"
몇 차례 다리가 아프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한 차례는 이런 말씀을 덧붙이신다. "그래도 양쪽 다리가 다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다."
마침 주치의 닥터 강이 당직이라서 면회시간이 끝난 뒤 잠깐 기다려서 만났다. 시종일관 환자 입장에서 걱정해 주는 것이 참 신통하고도 고맙다. 4년 전 백병원 중환자실이 생각난다. 그 끔찍한 기억을 적나라하게 적은 것을 보고 어느 독자의 서평에서는 '옥의 티'로 지적해주기도 했다. 김 선생 등 간호사들과 닥터 강의 태도에서 백병원과 천양지차를 느낀다. 그러나 이 차이를 백병원 중환자실의 책임으로만 돌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의 어머니와 그때의 어머니 사이에도 차이가 적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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