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19. 11:23
하루가 다르게 정신이 좋아지신다. 장난끼도 나타나기 시작하셨다. 그에 앞서 "고맙습니다." 타령도 나오셨다. 벙긋벙긋 웃고 계시다가 손을 뻗쳐 아내나 내 얼굴을 만져보기도 하신다. 어제저녁에는 30분 내내 초롱초롱하셨고, 면회시간이 끝나 작별하고 나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얼굴빛도 며칠째 아주 좋으시다. 중환자실 간호사들 사이에 '인기짱'이 되어 계시더라고 이제 막 어머니께 다녀온 아내가 말한다.
이번 문제의 개요는 이런 것 같다. 전면적으로 나타난 것은 신장 기능 저하였다. 혈액 순환이 원활치 못한 문제와 피드백 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신부전 때문에 혈전이 쌓여 혈액 공급이 안 된 곳에서 조직 괴사가 일어나 그 분해물이 신장에 더욱 부담을 주는... 혈액 공급 문제가 가장 심한 심한 곳이 오른쪽 다리여서 그쪽 혈전 제거 수술을 받으신 것이다.
그 수술은 효과가 충분치 못했던 모양이다. 발가락, 발꿈치뿐 아니라 발목과 정강이 피부까지 괴사 현상이 진전되어 있어서 혈액 공급이 회복되고도 되살리지 못하는 부위가 너무 커졌다. 그저께 정형외과 전문의의 진찰 결과를 어제 아침 주치의 강 선생이 알려주었다. 오후에는 정형외과 이 선생을 만나 설명을 들었다. 저녁 때 마침 강 선생이 당직으로 있기에 절단 수술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일러두었다.
괴사 부위를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으면 절단하지 않고 지속적 약물치료로 안전을 유지할 수 있기를 희망한 것이었다. 그런데 제한이 힘든 정도인지라, 절단하지 않고 둘 경우 패혈증 등 병합증세의 위험이 너무 크고 고통이 계속해서 심하실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주 혈전 제거 수술 때부터 "여의치 않을 경우" 절단의 가능성을 듣고 있었다. 그 경우가 처음에는 상상하기에 너무 끔찍했다. 그러나 1주일 동안 그 가능성을 머릿속에 굴리며 충격이 완화되었다고 할까? 정 필요하다면 그렇게라도 생활을 계속하실 수 있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잡혔다.
수술 준비에 닷새 이상 시간이 필요하니(지금까지 혈전 용해를 위해 투입하던 약물의 효과가 완전히 걷히지 않으면 수술 시 지혈이 힘든 문제가 있다고) 24일경이 될 것 같다. 집에 돌아와 김호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차피 큰 수술이 예정되어 있다면 이대 부속병원에서 퇴직자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있다면 옮겨서 수술 받으시게 할지 검토해 보기 위해서였다. 혜택이 없지는 않지만 시원치 않다. 힘들게 옮겨드리고 우리가 목동까지 쫓아다닐 메리트가 되지 못한다.
"절단 수술"이라고 하니 김 선생님 역시 듣기에도 끔찍해 하신다. 걱정을 풀어드린답시고 객적은 소리를 했다. "근년에 마음 편하신 걸 보면 다리 하나 잃는다고 지나치게 상심하지 않으실 것 같아요. 손을 뻗쳐봤다가 다리가 잡히지 않으면 '내 다리 어디 갔냐?' 하실 것 같은데요?" 했더니 한 차례 깔깔 웃으시면서도 속으로 "참 괴상한 아들도 다 있다. 저런 걸 효자라고 할 수 있나?" 하시는 기색이 느껴진다.
형들에게 아직 수술 방침을 얘기하지 못했지만, 무슨 판단이든 내 판단에 맡길 것으로 믿는다. 형들 아니라 어느 분이라도 판단을 재고할 만한 이유를 제기해 준다면 무엇이든 고려할 것이다. 그러나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 형식적, 법률적 의미를 넘어 나는 어머니의 '보호자'가 되어 있다. 판단은 어쩔 수 없는 보호자의 책임이다. 여기에 적는 것은 혼자 걱정하기 벅차니까 읽는 분들에게 걱정을 나눠드리려는 속셈이다. 그동안 내 즐거움을 많이 나눠드렸으니까 걱정도 좀 나눠받아 주시기 바란다.
의사를 쉽게 보실 수 있는 곳에 계셨으면 이런 지경까지 오시기 전에 조치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이 어쩔 수 없이 든다. 그러나 '자유'와 '안전' 사이는 어쩔 수 없는 상치관계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더 안전한 곳에 계셨다면 지난 20개월 동안 같은 행복을 누리실 수 없었을 것이다. 세종너싱홈은 더할 수 없이 편안한 조건이면서 안전성도 훌륭한 곳이었다. 이 정도 단계에서 문제가 포착된 것도 보통 넘게 운이 좋으셨던 것이다. 까다로운 지속적 의료 관리가 필요치 않은 상황이 되신다면 세종으로 다시 모실 가능성도 생각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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