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5. 09:06

오늘은 저녁 때 아내랑 함께 갔는데도 아들 우습게 보시는 기색이 갈수록 더하시다. 아내를 먼저 올려보내고 차를 세워놓은 뒤 따라 올라갔는데, 들어서는 나를 쳐다보시는 눈길부터 삐딱하시다. 다가가 내 딴에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는데 제대로 받지도 않고 "앉어!" 하고 호통으로 시작하신다. 인사드릴 때나 응대할 때나 약간 과잉 동작으로 기분을 풀어드리려 애쓰는데, 그런 게 몽땅 지어낸 수작이다, 웃기지 말아라, 하는 기색이시다.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계속 트집잡고 호통을 치시는데, 완연히 즐기는 기색이시다. '회춘'이라더니, 정말 사춘기까지 회복되신 것 같다. 하도 정신없이 당하다 보니 집에 돌아와 바로 컴 앞에 앉아서도 뭘 당했는지 얼떨떨한데, 그 중의 백미 한 대목은 또렷이 생각난다. 무슨 말씀 끝에 "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했더니 하늘을 쳐다보는 것처럼 고개를 드시고 "너같은 아들을 두고 내가 어떻게 걱정을 안할 수 있겠니?" 한탄을 하신다. 며느리 대접을 잘 못 받는다고 늘 투정하던 아내가 오늘은 내가 당하는 꼴을 보며 고소한 표정으로 연신 깔깔댄다. 어머니 소리가 높아지실 때가 많아 여사님들도 이따금 와서 내 역성을 들어주지만 어림없다.

"네 소리도 듣기 싫고 네 꼴도 보기 싫다." 소리를 몇 번 하셨는지 헤아리지도 못하겠다. 그러다가 한 차례는 "네가 옆에 있기만 하면 내가..." 하고 말끝을 흐리시기에 이번엔 무슨 험한 말씀이 나오시려나 긴장해서 귀를 기울이는데... "... 가렵다." 하신다. "긁어드릴까요 어머니?" 하고 짧게 깎으신 머리에 손을 대니 "그래." 하고 맡기신다.

일어설 차비를 하고 있을 때 옆방의 강 여사가 무슨 일로 들어왔다가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니 밑도 끝도 없이 "나한테 아들이 있는데..." 하고 말씀을 꺼내시고는 "그놈을 야단쳐 주면 속이 시원해진단 말이요." 하신다. 내가 왜 이놈을 이렇게 갖고 노나, 자의식은 분명하신 것이다.

뉴라이트 얘기는 꽤 길게 나누셨다. 오늘도 책을 보여드리니 제목을 읽으신 다음 "뉴라이트가 뭐냐?" 물으시기에 "요새 좀 이상하게 까부는 애들이 있어서 제가 야단을 쳐준 거예요." "니가 뭘 안다고 남을 야단치냐?"까지는 엊그제와 같은데, 오늘은 "그래 걔들이 어떻게 까부는데?" 이어 물으시기에 "걔들이요, 일본 식민통치가 한국을 근대화시켜 줬으니까 고마워해야 한다 그러고요, 이승만도 한국을 빨갱이한테서 지켰으니까 훌륭한 분이라고 그래요." 꽤 긴 대답인데 다 이해하신 듯 "뭐? 말도 안돼!" 하신다. 조금 후에 그 생각을 더 하신 듯 "니가 야단친다고 일본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겠냐?" 물으시기에 "그게 일본놈들이 아니고 한국놈들이예요." 했더니 "한국놈들이 그런 소리를 해?" 하셔서 "네, 어머니. 그런 애들이 있어요." 확인을 받고는 "제정신이 아닌가보다." 하셨다.

오늘 특이사항으로 눈에 띤 것은 손아귀 운동을 위한 고무 손잡이에 대한 관심 집중이다. 자전거 핸들 모양의 길쪽한 공에 마찰을 위한 돌기가 빽빽히 붙어 있는 것인데, 그것을 세워서 들여다보며 위쪽부터 돌기의 고리를 엄지로 한 줄씩 짚어 내려오며 하나, 둘, 셋 세다가 고정시키고는 "이게 몇이냐?" 내게 물으신다. "셋이죠, 어머니?" 대답하니 왼 손을 들어 짚어 내려오며 하나, 둘, 셋 하고는 "더 많은데?" 하신다. "넷인가 봐요, 어머니." 하니까 힐끗 쳐다보며 "넌 이런 거 하나도 못 세냐?" 한 방 먹이고 다시 손잡이를 들여다보시며 "넷, 그래, 우리가 여기에 관심을 주목해야 되지." 우리한테 하시는 말씀인지 중얼거리시는 혼잣말씀인지 알 수 없다. 우리가 곁에 앉아 있는데도 손잡이랑 꽤 오래 노셨다.

집중력이 강해지시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런데 무슨 의미를 가진 행동이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기력이 좋아지시는 데 따라 예측도 이해도 되지 않는 반응과 행동이 늘어나신다. 나를 꾸짖으시는 것도 전체적으로는 장난스러운 분위기 속에 진행된 일이지만, 이따금씩 제어 안 되는 난폭성이 살짝살짝 드러나기도 한다. 중환자실의 병상이라는 공간에 만족하지 못하실 상황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어머니 샌드백 노릇 하는 동안 아내에게 일반병실을 구경해 보라고 부탁했다. 나중에 얘기 들으니 공간은 대체로 괜찮아 보이는데, 간병인들이 대부분 기운 없는 노인네들이라서 좀 아쉬워 보이더라고 한다. 다른 대안도 알아보겠지만, 설 지난 뒤에는 우선 병원 내의 일반병실로 옮겨드리게 될 것 같다.

낮에 자유로 병원의 노 실장에게 전화해서 형편을 얘기하고 불원간 구경하러 가겠다고 했다. 와 주시기만 하면 하늘같이 모시겠다고 노 실장이 정말 기쁜 듯이 장담한다. 자유로 병원은 그 사이에 일부를 요양원으로 개조해서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나란히 운영하고 있다. 지금처럼 기본 건강에 아무 문제 없이 회복이 계속되신다면 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받으실 수 있는 요양원의 장점을 취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병원이 바로 아래층에 있으니 편리한 조건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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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