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16. 13:11

모택동은 지식인에 대해 무수히 많은 말을 했습니다. 다들 어떤 것이 그의 진정한 생각인지, 어떤 것이 전략적인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현재 나를 포함하여 일부 연구자들은 지식인에 대한 모택동의 진정한 생각이 가장 잘 표현되어 있는 것이 바로 1920년대 대혁명의 시기에 쓴 한 편의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로 현재 <모택동 선집>의 첫 번째 글로 실려 있는 "중국 사회 각 계급 분석"에서의 한 가지 판단입니다. ... 우리는 이것이 아마도 가정 진실한 모택동의 생각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모든 지식인은 모두 "극단적인 반혁명파"이거나 또는 "半 반혁명파"이다. ...

 

그는 실제로 '프티부르주아계급'과 혁명의 대상으로서의 '대지주 및 대부르주아계급'을 동등하게 본 것이고, 따라서 그의 분석에서 지식인은 부르주아계급에 속할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와 결탁한 '대지주 및 대부르주아지계급'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정당과 대립될 뿐 아니라, 국가와 민족 이익과도 위배됩니다. 이런 이유로 모택동은 지식인들, 특히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개조를 받아들이지 않는 지식인들을 '망당과 망국'의 근원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과거 그가 지식인을 '반혁명파'라고 한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이렇게 모택동은 사실상 계급의 입장뿐 아니라 민족의 입장으로 지식인을 심판대 위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1949년 모택동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는 아마 이렇게 노골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더욱 근본적으로 지식인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표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毛皮論'입니다. 그가 보기에 지식인은 이리저리 떠나니는 독립적 지위가 없는 '털'과 같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가죽' 위에 달라붙어 있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계급 쪽에 붙거나, 또는 부르주아계급 쪽에 붙게 되고, "가죽이 없으니, 털은 종속될 뿐"이라며, 근본적으로 지식인의 독립적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 이는 존재론적으로 매우 철저하게 지식인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1956년 2월 흐루쇼프가 비밀보고서로 스탈린 시대를 비판한 소련공산당 20차 대회를 계기로 중-소 관계의 변화와 함께 중화인민공화국의 한 차례 격동이 시작된다. 이때 절대화된 마오쩌둥의 영도력이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이끌어 가게 되는데, 그 영도력의 중요한 한 측면이 지식인에 대한 태도다. 1956년 북경대학에 입학한 첸리췬은 이후 자신의 정체성을 '지식인'으로 지키게 되고, 그로 인해 많은 고심과 고생을 하게 되므로 중국사회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생각은 중화인민공화국 60년의 역사를 정리하는 데서도 하나의 중요한 측이 된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