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고속터미널까지 전철로 왕복 3시간, 거기서 거제까지 승용차로 왕복 8시간 반, 모두 11시간 반을 길 위에서 보냈다. 거제까지 당일에 다녀온다는 게 나로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윤 선생님 사정이 그러시다는데 그분과 모처럼 긴 시간 이야기 나눌 기회가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란히 앉아 8시간 반은 너무 길었다. 너무나 재미있고 매력적인 분인데도 밤이 깊어지면서 살짝 싫증이 나려 했다. 그분도 그랬겠지.
고딩 시절 가까이 지냈으나 졸업 후 몇 차례 못 본 여익 군이 내 글을 좋아해 근년 볼 기회를 드물드문 만들더니 1년쯤 전부터는 백씨인 윤 선생님까지 더러 함께 뵙게 되었다. 그분은 근년 평화재단에 관여하고 있는 터에 내 글을 두루 살펴보고는 내 의견이 평화재단 사업에도 많이 반영되었으면 좋겠다며 힘써 주셨다. 6월 8일부터 5회에 걸친 현대사 대담 시리즈를 기획하면서도 내 의견을 열심히 청해 많이 반영해 주셨다.
어제 거제행은 몇 달 전 얘기가 나온 것이다. <해방일기> 완간 기념 대담강연회에 형제분이 와줬는데 뒷풀이 자리에서 이병한 선생이 화제에 올랐을 때 내가 이 선생 부모님을 한 번 '구경'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내 연배 분들 같은데 자식이 저런 길로 나서도록 뒷받침해 주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궁금하다고. 그랬더니 윤 선생님이 자기도 무척 궁금하니 한 번 같이 가보자고 나섰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말씀은 그렇게 했어도 바쁜 분인데 정말 함께 가게 되리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며칠 후 계씨가 전화해 일정을 잡고, 결국 어제 다녀오게 된 것이다. 그분으로서는 6월의 대담 시리즈를 앞두고 내 의견을 한 차례 폭넓게 청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무리한 일정을 강행하게 된 것 같다.
1시 반 넘어 '거제 3대 함흥냉면'집에 도착했다. 이제 조용한 시간일 테니 타이밍 좋다, 하면서 들어가 보니 예상 외로 북적댄다. 나중에 사장님에게 들으니 12시에서 한 시까지는 직장인들과 예약손님이 몰리기 때문에 사정 아는 일반 손님은 1시 이후에 온다고 한다. 반갑게 맞이해주는 사장님, 잠깐 수작을 나누며 보니 '치세의 한량, 난세의 호걸' 인상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엄청 반가우시겠지, 별난 길 걸어가는 아들 신통하다고 전직 장관님 일행이 그 먼 길을 찾아왔으니. 몇 마디 얘기 나누다가 "사실은..." 하면서 고충을 털어놓았다. 누가 "병한이 걔는 뭐해요?" 물을 때 난처할 때가 많다고.
식사 후 사모님이 와서 함께 담소를 나누는데, 아버님도 참 든든한 어버이지만 어머님의 뒷받침이 정말 보통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선생에게도 어머님과 이야기 많이 나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는데, 어머님께 들으니 더 실감 난다. 마침 어머님이 파평 윤씨에다가 손님 형제와 고향도 가까우니 굳이 따지려면 촌수도 따질 만한 사이일 것 같다. 항렬이 손님들보다 하나 위다. 그런 조건까지 겹친 덕분에 스스럼없이 벼라별 얘기를 다해 주신다. 이 선생이 여기 들어와 볼 염려가 있으므로 그 내용은 적지 않는다. 아무튼 내가 지금까지 보고 들은 모자간 가운데 가장 이해가 깊고 공감이 넓은 모자간이다.
부모보다 더 연장인 이들이 아들 생각해서 찾아왔다는 데 내외분 모두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면서도 몇 차례씩 "너무 황송하다"는 말씀들을 하신다. 내가 눙치려고 한 마디 했는데, 해 놓고 보니 좀 지나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세상이 바뀌었으니 그렇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예전에는 훌륭한 스승이 있으면 좋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는데, 요즘은 훌륭한 제자가 있으면 좋은 스승들이 몰려든답니다." 다들 재미있게 들어주기는 했지만, 아첨이 좀 심하지 않았나 반성이 되었다. 여익 군에게 나중에 물었다. "야, 내가 이렇게 아첨 잘하는 놈이 될 줄 학교 다닐 땐 몰랐지?" 상상도 못했다는 대답이었다.
사장님이 어느 한적한 마을로 안내해 가서 길가의 '있는지 마는지 한' 집으로 몰고 들어갔다. 그런 집에서 얼마나 만족스러운 횟상을 받을 수 있을지 관광객들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밖에서 봐서는 라면 하나라도 제대로 얻어먹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집꼬라지다. 다섯 시도 안 되었는데 작지 않은 방이 꽉 차 있다. (우리까지 모두 20여 명?) 사장님과 나 둘이서 소주 두 병을 깠는데, 나는 아들보다 아버지랑 친구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방문 계획을 전화로 알릴 때 "아드님 친구"라고 나 자신을 소개했다. 아드님도 나를 자기 친구라고 말씀드려 뒀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는 길에 윤 선생님이 탄식을 흘리는지, 탄성을 발하는지, 몇 차례 되뇌신다. "내가 별 일을 다 해 보네." 마음에 드는 필자나 연구자가 있을 때 연락해서 만나는 일이야 종종 있겠지만, 본인을 만나보기도 전에 그 집부터(더구나 그 먼 곳까지) 찾아가 부모를 만나는 일은 물론 처음이시겠지. 그 댁 내외분께 우리가 어떻게 보였을까? 가정방문 온 선생님들? 아니면 동방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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