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과학사학회 후배 한 분이 찾아왔다. 점심과 커피 한 잔 함께 하며 네 시간 동안 열띤 대화를 나눴다. 그 대화를 통해 연구자로 부활하는 꿈을 되살리게 되었다.
요점은 "세계문명교섭사"를 두툼한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는 작업의 제안이었다. 자기 연구소에서 "한국과학문명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내가 맡아준다면 그 과제를 넣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과학문명사가 중국문명과의 관계, 서양문명과의 관계를 통해 전개되어 온 양상이 과제의 중심 표적이지만, 일반적 문명교섭사가 잘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므로 배경 확보에 큰 비중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는 의견이다. 그리고 근년 내가 이런저런 논설을 통해 발표해 온 문명사관이 문명교섭사의 정리를 위한 좋은 틀이 될 것으로 본다고 한다. 추진할 경우 3년간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이라고 한다.
대학을 떠난 후 25년 동안 제도적 지원을 받는 '연구'보다 내가 좋아서 하는 '공부'만을 생각하며 지냈다. 지원을 바라지 않으니 공헌할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 7년 전부터 저술활동에 나서게 되었는데, 그저 내가 좋아서 해온 공부가 쌓이다 보니 사회에 공헌할 여지도 생긴 셈이다. 공헌이 되는 것 같으니까 거기에 보람을 느끼게 되어 열심히 하게 됐다. 공헌에 대한 보답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먹고 살 조건만 확보하면 됐다. 공헌도 내가 좋아서 하는 짓이니까.
그러다가 2~3년 전부터 제도적 지원을 생각하게 되었다. 적절한 지원을 받으면 사회에 대한 공헌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내 활동이 국내 출판시장에 책을 내고 국내 언론(거의 전적으로 <프레시안>)에 글 올리는 범위 안에 있는데, 독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그럼으로써 출판사와 언론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관심에 부응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쌓아놓은 밑천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형성되어 있는 관심에 얽매이지 않을 필요를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2년 전 "동아시아의 20세기" 연구과제를 구상해서 그 과제의 가치를 평가해줄 만한, 그리고 합당한 지원을 확보해 줄 만한 위치에 있는 지인에게 보냈다. 그러나 지원을 확보해줄 형편이 되지 못한다는 응답을 받았다. 내 공부 밑천을 알뜰하게 활용하면서도 사회의 관심에 부응할 만한 방향으로 구상한 과제였다. 그런데 이것도 통하지 않으니, 이제 연구자로서 지원을 확보할 희망은 아주 버려야겠다고 체념했다.
그런데 어제 느닷없이 기회가 나타난 것이다. "세계문명교섭사"라면 "동아시아의 20세기"와 비교하더라도, 사회의 관심에 부응하는 부담 없이 쌓아놓은 공부를 철저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과제다. 게다가 해외출판까지 예약돼 있는 프로젝트라니! 그 친구 보는 앞에서 내 뺨을 꼬집어봐야 했다.
22년간 학술논문 한 편 쓰지 않은 내게 이런 일 맡길 생각을 한 그 친구 배짱도 대단하다. 규모가 큰 프로젝트이므로 전체적으로는 무난한 수준을 지키되, 해외 학계에서도 눈을 크게 뜰 모퉁이 하나둘 쯤은 만들어보고 싶은 모양이다. 10여 년 못 보고 지내는 동안에도 책으로 나온 내 글은 다 읽었다며(<해방일기> 빼고), 내 생각을 이 과제에 잘 담아주기만 하면 운영자로서 자기도 큰 보람을 느낄 거라고 치켜올려 준다. 작별하며 내가 "오늘 엄청 반가웠어요." 했더니 "선생님이 반가우셨다니 저도 엄청 반가워요." 화답한다.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으니 "탁오 선생 어쩌나," 생각이 든다. 할 수 있나, 여가시간에나 놀아 드려야지. 앞으로의 노년활동을 그리 비관적으로 내다보지는 않고 있었지만, 이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면 '삶의 질'이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높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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