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방 선생이 발문을 부탁할 때 내 귀를 의심했다. 그의 무모함이 이 지경에 이를 수 있었는가. 20여 년 어울려 온 바둑 친구들 사이에 그의 무모한 기풍과 내 악랄한 기풍은 나란히 정평이 있거니와, 이런 부탁을 받을 일은 상상을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책이 인문학을 표방한 것이라는 말에는 기가 턱 막혔다. ‘작가를 내걸고도 온갖 잡문에 전념해 온 그가, ‘역사학자로 당당히 행세해 온 내게 인문학을 들고 나오다니... 우리 분야에서 나는 서평 모질게 쓰기로 악명 높은 사람이다. 붓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지 않던가? 늘 하던 식대로 한 차례 휘둘렀다가 많지도 않은 친구 하나 잃어버릴 걱정으로 기가 막혔던 것이다.

 

그래서 바로 다짐을 놨다. 착하지 못한 내용을 발문에 담아도 되냐고. 이 정도 협박에 물러설 허방 선생이 아닌 줄은 안다. 그래도 경고는 해놔야 뭐를 써도 쓸 수 있겠다.

 

보내준 글을 읽다가 이 선생이 스스로 지은 아호 허방(虛放)’의 뜻을 새로 생각하게 된다. ‘허랑방탕(虛浪放蕩)’을 줄인 말이라는데, 줄여도 참 묘하게 줄였다. ‘는 빈 것이고 은 가벼운 것인데, ‘만 취하고 을 버렸으니 비었지만 가볍지는 않다는 뜻인가? ‘은 풀려난 것이고 은 어지러운 것인데, ‘만 내놓는 것은 매이지 않으면서도 어지럽지 않다는 뜻인가? 본인이 알고 그렇게 고른 것일까? 참으로 허허실실이다.

 

아호의 의미가 새삼스레 떠오르는 것은 그와 비슷한 역설(逆說)’의 맛이 그의 글에 온통 깔려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잡문이란 말을 썼는데, 글쓰기에 일생을 바친 사람에게 대단한 실례의 말씀이다. 하지만 그 자신의 잡문에 대한 자긍심을 알기에 스스럼없이 쓰는 것이다. 그에게 순문(純文)’, 순수문학 같은 것을 요구한다면 기절초풍하고 도망갈 것이다. “아무거나, 아무렇게나쓰는 것이 그의 본령이다.

 

그의 잡문은 중국 고전에서 현대물리학에 걸친(그 밖의 곁가지도 많은) ‘잡학(雜學)’에 기초한 것이다. ‘잡학박식(博識)’과 다른 것이다. 박식은 쓸 데 있는 것인데 잡학은 쓸 데 없는 것이다. 쓸 데가 있고 없는 차이는 어떤 주어진 틀에 맞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잡학은 주어진 틀 밖(方外)에서 혼자만의 틀을 가지는 것이다.

 

혼자만의 틀을 가졌기에 역설이 일어난다. 됫박에 담기지 않으니 하지만 일생의 무게를 실었으니 한 것이 아니고, 왜 저런 얘기 하는 건지 알 수 없으니 하지만 제 딴에 이치를 갖췄으니 한 것이 아니다.

 

요 몇 해 동안 허방 선생이 새로 쓴 글 읽어달라고 내게 청한 일이 없었다. 이제 생각하니 그의 글쓰기가 너무 허랑방탕하다는 언젠가의 내 불평에 삐졌던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장자(莊子)가 혜자(惠子)를 깔아뭉개는 대목에서, 장자의 가가대소(呵呵大笑)에 허방 선생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묻어 들리는 것 같다.

 

일전에 철학자인 한 친구가 무슨 말 끝에, “인문학 연구자는 나이 마흔 될 때까지 글 못 쓰게 해야 해!” 일갈했다. 논문 중심 연구평가 제도가 된장이 익기도 전에 자꾸 들쑤셔 썩혀버리는 꼴이라는 말이다. 그 이치에는 정학(正學)과 잡학의 차이가 없나보다. 허방 선생의 허랑방탕이 익을 만큼 무르익어 그 아호에 어울리는 경지에 이른 것을 치하한다.

 

'사는 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헌법재판소가 어떤 기관인지 아시는가요?"  (2) 2015.06.09
가정방문?  (0) 2015.05.28
광복군 묘소  (0) 2014.09.26
원고 청탁을 사양한 사연  (0) 2014.07.09
불우이웃돕기?  (4) 2014.06.23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