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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프레시안>에 어린이참정권에 관한 글 하나를 올린 일이 있습니다. <해방일기> 작업 중 선거연령의 의미에 관한 생각이 떠올라(몇 살 부터 참정권을 가진다고 칼로 베듯이 구분하는 게 타당성이 있는 일일까?) <위키피디아>를 들여다보다가 '데미니 투표권'이란 것을 알게 되었죠. 출생과 동시에 참정권을 부여한다는 개념이 매우 합리적이란 생각이 들고, 또 이런 제도라면 내가 당선을 바라던 문재인 후보에게 무척 유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 꼭지 쓸 생각이 났던 겁니다.

 

당시에는 그 실현 가능성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민주주의 선진국도 못 되는 우리나라에서 선진국에서도 채택하지 않는 제도를 앞장서서 채택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민주주의의 중요한 발전 방향이니까 언젠가 장래에 필요하게 될 때에 대비해 읽어주는 독자들의 관심을 촉구해 두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사태를 겪으면서 그 생각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언젠가 장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이 사회를 위해 절박한 과제로 생각되었습니다. <프레시안>에 몇 차례 글을 올렸는데, 너무나 절박한 과제로 여겨져서 글 올리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의논할 만한 이들 만날 때마다 이 이야기를 하며 실현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애써 줄 것을 부탁하고, 길담서원에도 오늘 이 자리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어째서 이것을 절박한 과제로 생각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좋은 조건을 한나라당-새누리당 정권이 만들어온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데, 사실 그런 일은 대한민국에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사건 자체보다 국민에게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사고 발생 후 정부의 태도입니다. 정부의 책임이 큰 사고라 하더라도 사고 처리를 제대로만 했다면 "뼈를 깎는" 정도 반성을 한다는 사과말씀 듣고 적당히 넘어갔겠죠. 그런데 사고 발생 후 정부기관들의 대응이 제대로 되지 않아 피해를 엄청나게 키워낸 문제가 속속 드러나고, 게다가 인사문제 등 엉뚱한 모습을 보이니까 현 정권을 지지하던 국민들마저 "이게 우리 정부 맞아?"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저런 것들을 누가 뽑아줬나?"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언제나 "국민"이었습니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더라도 "정권 퇴진" 얘기만 나오면 정권 측에서는 국가변란죄라도 보는 듯이 쌍심지를 켭니다. 국민이 뽑아준 정권이므로 절대적 정통성을 가졌다는 주장입니다. 51%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권은 49% 국민을 어떻게 짓밟아도 좋다는 배짱을 기회 있을 때마다 보여줘 왔습니다.

 

그런데 과연 모든 국민이 보통선거의 원리에 입각해서 제대로 참정권을 행사했나요? 3분의 1 국민에게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미성년자, 어린이들이 참여하지 못한 선거에서 미래보다 현재만을 생각하는 연령층이 과잉대표 되었습니다. 그런 선거에서는 세금 적게 걷는, 규제를 암덩어리, 원수처럼 여기는, 그래서 국가의 빚을 늘리고 환경과 자원을 거침없이 파괴하는, 대다수 국민의 안전과 복리를 소홀히 하는 정치세력이 선택받기 쉽습니다. 그 결과를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선진국에서 아동투표권이 논의되고 있으나 실현을 바라볼 만한 곳은 아직 없습니다. 왜일까요?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관념에 따라 제도를 서둘러 바꾸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성투표권만 하더라도 식민지, 개척지 등 주변부에서 먼저 실현을 보았습니다. 주변부에서는 평화와 안정을 지향하는 여성투표권의 실현이 중심부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여러 모로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그 극복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겠습니다만, 저는 가장 기본적 과제의 하나로 어린이참정권 도입을 많은 분들이 고려하기 바랍니다. 이 사회의 장래에 희망을 심기 위해 큰 효과를, 그것도 평화로운 과정을 통해 거둘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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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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