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책에 대한 관심에 감사드리고, 또 이 자리에 불러주신 데도 감사드립니다. 함께 열심히 토론에 임할 것이며, 또한 활발하고 충실한 토론이 될 수 있도록 저자로서 드릴 수 있는 도움을 드리도록 애쓰겠습니다.
토론 시작에 앞서 우선 이 책의 성격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밝히겠습니다. 어떤 의도로 벌인 작업인지, 어떤 토대 위에서 어떤 관점을 중심으로 이뤄낸 성과인지, 그리고 결과물에 대해 저자로서 어떤 아쉬움을 가졌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토론을 진행하다가 관심이 많이 모이는 주제를 사회자께서 지목해주시면 그에 대해 책의 문면에 나타난 것보다 더 소상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작업의 목적부터 말씀드리죠. 저는 다년간 중국사를 중심으로 근세동서교섭사를 공부해온 사람인데, 2008년부터 한국사에 관한 저술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첫 책이 <밖에서 본 한국사>인데, ‘국사’라는 집착에서 벗어나 보다 합리적인 역사관을 모색할 사회의 필요에 부응하려는 뜻입니다. 동서문명을 넓게 바라봐온 공부를 밑천으로 시도한 작업입니다.
이 책을 낸 뒤 한국사 중에서도 근현대사 쪽으로 끌려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민족주의의 진화 내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기존 민족주의를 비판하는데, 이것이 마침 그 무렵 고개를 들고 있던 뉴라이트 역사관의 민족주의 부정과 일맥상통하는 것 아니냐는 견해와 마주쳤어요. 그런 피상적인 착각은 무시하는 게 제 평소 신조인데... 존경하는 지식인인 장정일 작가님까지 그런 견해를... 그래서 뉴라이트란 데서는 어떤 얘기를 하는 건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찾아보니 참 고약한 얘기더라고요. 그런 고약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사회에나 있죠.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골방에서 저희들끼리 노는 게 정상인데, 강한 정치권력과 연계되어 사회에 영향을 끼치겠다고 달려들고 있는 거예요. 교과서까지 어쩌겠다고 야단들이잖아요. 이걸 누가 꾸짖어줘야 하는데, 가만 생각하니 꾸짖으러 나서기에 나만큼 적당한 입장에 선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데요. 그래서 <뉴라이트 비판> 작업을 하게 됐죠.
그 작업을 하면서 한국근현대사를 더 바짝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밖에서 본 한국사>에서는 기존 학설의 윤곽만 살피며 문명사의 넓은 시야를 그 위에 덧씌우는 정도 작업이었기 때문에 시비를 세밀히 따질 필요가 없었죠. 그런데 뉴라이트 역사관의 문제점을 알뜰하게 지적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치밀한 고찰이 필요했습니다. 요컨대, 한국사를 평론가 입장에서 건드리기 시작했는데, 이제 연구자 입장에 꽤 접근하게 된 겁니다.
그러고 보니 2010년, 합방 100주년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 시점까지는 망국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시각의 제기가 이 사회에 많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처럼 문명사를 넓게 바라봐온 사람이 제기하는 시각도 나름의 가치가 있겠다 싶었죠. 그 생각이 떠오르고 보니 아, 사회의 수요에 맞추는 방향의 작업을 한다면 책도 많이 팔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망국의 역사> 작업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작업에 임하면서 망국의 의미를 세 갈래로 설정했습니다. 조선이란 국가의 멸망이라는 국가 차원. 한국인이 역사상 처음으로 이민족의 전면적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민족 차원. 그리고 동아시아문명이 서양문명에 굴복하는 ‘서세동점’ 현상의 일환으로서 문명 차원.
제가 문명 차원에 가장 큰 중점을 두리라는 것은 제 공부의 배경으로 보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겠죠. 그런데 기존 서술에서는 국가 차원과 민족 차원의 관점들도 제대로 분화가 되어 있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실제 작업은 국가-민족 차원의 관점을 명확히 하는 데 중점을 두고 문명 차원의 관점을 배경에 깔아놓는 식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이 책에 적용시킨 전반적 관점을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19세기 후반의 조선에는 내외의 위기가 겹쳐서 닥쳤는데, 내부적 위기는 국가구조에 대한 위협이었습니다. 이 측면에 대해서는 한국근대사 연구자들의 연구가 많이 쌓여 있어서 평론가 입장의 제가 끼어들 여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적되어 온 문제적 현상들에 대해 사회경제적 위기의 측면을 넘어 문명 위기의 측면으로 보는 해석을 덧붙일 수 있었습니다.
내부적 위기보다는 외부로부터의 위기를 설명하는 것이 제 본령이었습니다. ‘서세동점’의 틀로 개항기 외부의 위협을 해석하면 지금까지의 해석보다 더 석연하게 풀리는 것이 많습니다. 예컨대 왜 일본에는 개항으로부터 메이지유신 출범까지 근 20년 동안 외세의 심각한 개입이 없었을까? 왜 청나라는 원세개의 군대를 조선에 보냈을까? 왜 러시아는 아관파천으로 호박이 넝쿨째 떨어졌는데도 주워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제가 무엇보다 ‘망국’의 의미에 관해 중요하게 생각한 문제는 과연 1945년의 해방으로 망했던 나라가 되살아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완전히 되살아나지는 못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진정한 ‘광복’의 기본 지표가 민족국가의 회복에 있는데, 그 지표조차 아직까지도 충족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계정세 속에서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는 거시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밖에서 본 한국사>를 쓸 때, 역사의 모든 고비에서 거시적 시각이 도움이 될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근현대사 영역에서 그런 측면이 특히 큽니다. 세계정세의 변화가 급격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중엽의 세계에서 민족주의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감안하지 않고는 1948년 분단건국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20세기 후반에 남북한의 주민이 겪은 질곡은 20세기 전반 식민지시대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20세기 초입에 겪은 ‘망국’ 상태가 20세기 말까지 계속된 결과로 이해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망국’에는 국가 차원, 민족 차원보다 문명 차원의 문제가 더 큰 것으로 봅니다. 국가의 최소한의 꼴은 갖췄고, 반쪽의 민족국가는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전혀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는 서양문명의 정복에 따른 ‘전통’의 상실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남한 사정만 놓고 보죠. 친일파 척결에 실패해서 친일파 못지않게 악질적인 친미파가 형성되어 특권구조에 집착한다는 지적이 많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를 쳐다보느냐 하는 것보다 전통적 가치질서를 파괴한 데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통시대에는 엘리트계층이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의 안전에 공헌하는 질서체계가 있었는데, 그것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니 뭐니 남의 전통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산업혁명 이래 근대문명의 특성으로 ‘폭력성’을 부각시켰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환경-자원 문제가 심각해지는 데 따라 많이 지적되어 온 특성입니다. ‘선진’ 근대사회에서는 이 폭력성을 어느 정도 전통 질서의 힘으로 견제해 온 반면 이 폭력성이 벌거숭이로 날뛰게 한 것이 전통을 상실한 식민지사회의 현상이었습니다. 그 현상에서 한국사회가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측면을 자각하는 것이 향후의 진로를 찾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이 책 바닥에 깔아놓았습니다.
이 작업을 망국 100주년인 2010년 여름에 맞춰 마무리하며 여러 면에서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그 후의 제 작업 방향 선택에 이 아쉬움이 많이 작용해 왔습니다. 2010년 여름부터 작년 여름까지 3년간 <해방일기> 작업을 한 것은 1945년의 ‘해방’과 1948년의 ‘건국’이 진정한 ‘광복’과 어떤 거리를 가진 것인지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해방일기>에 이어 <냉전 이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1990년을 전후한 ‘냉전 해소’가 세계정세에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한반도는 이 변화에 보조를 맞추지 못해 왔습니다. 냉전 해소가 다른 어느 곳보다 큰 변화를 가져와야 할 이곳에 제대로 변화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 일어나야 할 변화가 진정한 ‘광복’이라는 생각 위에서 이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반도 내부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점검해보고 있습니다.
<냉전 이후> 작업을 통해 21세기 들어와 눈에 띄게 진행되고 있는 세계적 변화의 의미에도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중엽에 동아시아지역으로 밀려온 ‘서세동점’의 물결이 해소되거나 역전되는 기미를 살피는 것입니다. 아마 <냉전 이후> 이후 작업은 이 시도를 더 밀고 나가는 것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여 년 전 조선의 망국이 혼자 망한 게 아니라 문명 몰락의 일환을 이룬 사건이었던 것처럼, 이제 한국이 망국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도 혼자 기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문명 부흥의 흐름 속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을 키우고 있습니다. 물이 빠질 때 모든 배가 내려가고 물이 들어올 때 모든 배가 떠오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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