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선생 서재에 한 달에 한 번 찾아가는 게 얼마 전부터 관행이 됐다. 내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얘기 듣는 것을 유 선생이 별로 싫어하지 않고, 더러 요긴한 조언도 해준다. 자료 구하는 데도 도움을 받는다. 자기 하는 일과 하려는 일 얘기도 요즘은 꽤 많이 나누게 되었다.
비엣남 다녀오느라고 사이가 좀 떠서 달포 만에 찾아갔다. 얘기 좀 나누다가 점심 하고는 돌베개 북카페 오늘 연다니 가보자고 한다. 가니까 바깥 테이블에 마침 한 사장이 어느 신사분과 앉아 있어서 인사 나누고는 저쪽 테이블에 앉는데, 유 선생은 신사분 옆에 앉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곧 건너오겠지, 하고 있는데 유 선생이 손짓해 부른다. 가니까 "김 선생님, 신 선생님께 초면이신가요?"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듯하던 그 얼굴이 신영복 선생이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선생님." 악수를 나누고 앉으며 생각하니 십여 년 전에 마주친 생각이 난다. 중앙일보에서 전문위원 노릇 할 때 신 선생의 <엽서> 프로젝트로 만난 일이 있었던 얘기를 하니, "아, 그랬군요. 김 선생 글 종종 읽으면서도 그 생각은 못했습니다." 한다.
그러고도 유 선생과 내가 패지어 나타난 게 어떤 연유인지 좀 어리둥절한 기색이다. 유 선생이 눈치채고 1998년에 함께 일하던 얘기를 해드리니 재미있어 한다. 재벌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가 이어졌다.
세 사람이 한참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자리를 잠깐 떴던 한 사장이 방명록을 들고 돌아와 너스레를 떤다. "돌베개의 보물 같은 저자 세 분이 함께 앉아 계시니 보기 좋습니다." 저런저런. 내가 돌베개에 벌어드린 돈이 두 분의 1퍼센트 수준도 안 될 텐데, 자리 잘 잡은 덕에 비행기를 탄다.
신 선생이 좋은 글을 좋은 글씨로 써준 뒤에 방명록이 내 앞으로 돌아온다. 솔직하게 한 마디 했다. "유 선생이랑 제가 먼저 써야 하는 건데. 신 선생님 뒤에 쓰려니까 주눅들어 못 쓰겠습니다." 한 차례 웃음을 나눈 뒤 방명록 앞쪽을 펼치며 나는 일반석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한 사장이 막무가내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썼다. "행간의 사람이 여백을 바라보는 곳에서." 카페 이름이 "행간과 여백"이다.
일어날 무렵에 신 선생이 내게 덕담 한 마디를 던져준다. "우리 집사람이 김 선생님 글을 아주 좋아해요. 그 시병일기 같은 거." 고맙게 들으면서도 좀 갸우뚱하는 마음이 든다. 부인만 좋아하고 자기는 안 좋아하나? 공교롭게 내가 무척 존중하는 또 한 분 선생님, 서중석 선생도 그런 말씀을 한 일이 있다. 본인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거족적으로 좋아한다는, 호감을 강조하는 뜻이라고 믿고 싶다. 아니, 믿는다! "불신지옥"이라는데.
좋아하는 친구, 존경하는 선생님과 함께 한 뜻밖의 자리였다. 적다 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거기 직원들이 사진 열심히 찍던데, 나중에 인증샷 하나 얻어와서 여기도 붙여놔야지.
사진 옮겨놓고 보니 떠오르는 시상이 있다.
茄菲香裏 枕厚冊 韓代表頭 禿也白
世間之事 都錯綜 行間之人 望餘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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