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하노이에 돌아온 후로는 별로 나다니지 않고 이 선생 집에서 책이나 읽다가 산보나 하며 지내고 있다. 기껏 움직이는 게 어제오늘 오후의 '버스 투어'. 5천 동(우리 돈 3백원 가량) 짜리 시내버스 타고 도시 반대편에 가서 산보하다가 쥬스나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서민형 투어다.
오늘 신시가지(한국인 몰려사는 동네. 한글 간판도 꽤 있다.) 가서 커피 한 잔 하고 돌아오는데, 정류장에 나 외에 수더분한 인상의 아주머니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와서 아주머니 먼저 타고 내가 탔는데, 빈 자리가 하나만 있었다. 이 아주머니가 아주 자연스럽게 나더러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속으로 기특해 하면서 앉아 있는데, 한두 정류장 뒤에 할머니가 한 분 탔다. 그러자 차장이 (스무 살 전후의 청년들이 시내버스 차장을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내 앞자리의 처녀 어깨를 툭툭 쳐 일어나게 하고는 할머니를 앉히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차장이 아는 처녀인가 했는데, 그 처녀 내릴 때까지 기색을 봐도 그런 게 아니다. 일으켜세우는 차장이나 일어나는 처녀나 아주 당연한 것처럼 행동한다.
외국 다니던 중에 이번처럼 현지인과 어울려보지 않고 지나가는 게 모처럼이다. 그런데 눈으로 보기만 하면서도 흥미롭게 보이는 구석이 많다. 말도 좀 배워서 다시 와보고 싶은 생각에 이곳과 관계된 일거리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본 비엣남사"? 한국에도 훌륭한 비엣남 연구자들이 그 동안 여럿 자라나서 비엣남사를 잘 소개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밖에서 본 한국사"를 쓴 것처럼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밖에서 본 비엣남사"를 쓴다면 전문 연구자들과는 다른 성격의 읽을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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