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한 살림 중에 아버지 인세 쌓인 것이 튀어나와 모처럼 '용돈'이 생겼다. 이 여유를 어디에 활용할지 금세 길이 보였다.(쓸 길을 이렇게 잘 찾으니까 늘 빡빡한 거겠지~) 여행을 가자!

 

이병한 선생이 하노이 체류하면서 내가 한 번 놀러오면 잘 안내해 주겠다는 말씀을 하나마나한 인사치레로 넘겨버리고 있었다. 꿈도 못 꿀 일이니까. 그런데 그 꿈을 이룰 조건이 느닷없이 이뤄져 있는 게 아닌가!

 

중국사 공부로 시작한 '동아시아' 생각이 자라 옴에 따라 비엣남을 한 번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 왔다. 그런데 갈 마음을 먹고 생각하니, 정말 억지로 만들려 해도 만들기 어려운 좋은 기회다. 공부와 생각이 나랑 많이 겹치는 이 선생이 불러주는데, 그분 안내를 받을 수 있다면 짧은 시간이라도 내가 원하는 시각을 잘 열어줄 게 아닌가.

 

여행 열심히 다니던 시절 생각이 난다. 1985년에서 1991년까지, 주로 유럽을 다녔다. 1985년 상반기를 영국 케임브리지에(니덤연구소) 체류하며 연구주제를 중국역법사에서 동서교섭사 쪽으로 돌린 이유도 유럽 많이 다니고 싶은 욕심에 꽤 있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그 후 몇 해 동안 방학만 하면 유럽으로 쫓아다녔는데, 겉으로는 자료조사를 앞세웠지만 속으로는 그곳 연구자들의 연구와 생활 자세를 어울리며 배우는 것이 더 큰일이었다. 방학 너무 짧은 것이 늘 아쉬워서 결국 학교를 아예 그만두고 '장기방학'에 들어갔는데, 시간이 넉넉해지자 이제는 돈이 없어서 많이 다니지 못하게 되었었다.(물 좋고 정자 좋기 힘들다더니~)

 

비엣남 갈 생각이 떠오를 때 '당연히' 아내랑 함께 갈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혼자 잘 돌아다니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자유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곁에 아내 없이 아무 데도 다닐 생각을 못하게 된 것은 중국에서 생긴 버릇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이번엔 아무래도 아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그 사람이랑 많이 공유하는 게 아니고, 내가 같이 놀아주지 못하면 그 사람에겐 여행이 아니라 감옥살이가 될 판이다. 중국에서 같으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놀 수 있는 사람이지만, 거긴 말도 안 통하는 데 아닌가.

 

그래서 슬쩍 미끼를 던졌다. "당신 혹시 나랑 같이 비엣남 가는 게 큰 재미 없을 것 같으면 비행기값 현금으로 드릴 테니 따로 노세요. 나는 이 선생이 돌봐준다니까 걱정 마시고." 그랬더니 즉각 덥썩 무는 게 좀 섭섭할 정도다. "난 안 가요! 돈 내놔요!"

 

5월 들어서면 더위가 심하다고 해서 4월 중에 보름가량 다녀올 생각인데, 정확한 일정은 정하지 않은 채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있다. 그 동안 감기로 맥이 떨어져 열심히 알아보지도 못하고 지냈는데, 이제 정신 차리면서 생각하니 좀 서두를 필요가 있다. 이번 주 중엔 표를 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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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