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는 역사의 대목대목에서 역할이 컸던 존재이지만 현대인에게는 그 모습을 정확히 떠올리기 어려운 대상이다. 피라미드를 쌓던 노예에서 미국 목화밭에서 일하던 노예까지 온갖 노예의 모습 사이에는 여러 시대 여러 사회 지배집단의 모습 못지않게 큰 편차가 있었을 텐데... 제도로서 노예가 없는 현대사회에서는 노예가 추상적 존재가 된 것 같다. 노예의 역할을 크게 다룬 책은 중점을 두고 살펴 왔지만, 늘 장님 코끼리 만지는 기분이다. <엉클톰스캐빈>에서 굳어진 노예의 모습은 역사의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나타나는 노예의 실제 모습을 바라보는 데 방해만 된다.

 

오늘 도착한 패터슨의 책 서문과 2018년에 덧붙인 서문을 읽으면서 기대감이 올라간다. 역사사회학 관점에서 쓴 책인데, 그런 연구방식이 사회학계에서는 퇴조한 반면 다른 여러 분야에서 관심을 끈 데 보람을 느낀다는 2018 서문의 회고가 흥미롭다. 1980년대 이후 연구 동향의 전개에 관한 내 생각이 맞아떨어지는 현상 같아서다. 근현대 유럽인의 인식을 넘어서는 과거에 대한 시각이 떠오르는 '탈-근대'의 변화가 내가 기대하는 방향이다.

 

패터슨이 태어나 자라날 때까지도 자메이카에는 노예제도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사회의 특수계층 아닌 학생에게 학문의 길이 넓게 열린 첫 세대에 패터슨 자신도 속했다고 한다. 노예의 본질을 "social death"로 규정하는 패터슨의 관점에 기대가 가는 것은 그의 출신 환경이 노예 본인의 시각에 접근하기 좋은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Orlando_Patterson

 

Orlando Patterson - Wikipedia

Historical and cultural sociologist Horace Orlando Patterson OM (born 5 June 1940) is a Jamaican historical and cultural sociologist known for his work regarding issues of race and slavery in the United States and Jamaica, as well as the sociology of devel

en.wikipedia.org

 

Posted by 문천

 

국제정치학 연구자의 최신작이라서 입수해 놓고 서문만 읽은 다음 한옆에 치워놓았던 책이다. "근대를 주도한 것이 서양이 아니라 동양이었다면?" 하는 'alternative history' 같은 얘기를 꺼내는 것이 마땅찮아서였다.  내게는 밥맛없는 담론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만 갖고도 따져볼 길이 너무 많은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억지로 상상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일은 진짜 할일없는 사람들에게 맡겨놓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일전에 도착한 토비 그린의 책을 읽다가 자라콜의 연구를 언급한 대목을 보니 자라콜이 그렇게 할일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자라콜의 책을 다시 펼쳐보니 매우 흥미로운 관점들이 제기되어 있다. 가상역사에 대한 내 편견을 적용시킬 대상이 아니었다. 역사학자가 장삿속으로 가상역사를 내놓는 풍조는 질색이지만, 정치학자가 역사 영역에 접근하기 위해 도입부에서 떠올려보는 문제의식을 갖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일이 아니었다.

 

토비 그린의 책과 나란히 서둘러 읽으려 한다. 그런데 은근히 걱정되는 것이... 내가 바라보는 방향의 연구들이 근년 들어 늘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번 주 "근대화 뒤집기"에도 쓴 것처럼 인터넷 보급에 따라 연구활동의 기반이 확장되면서 제3세계와 관련된 연구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급속한 발전을 보고 있음을 실감한다. 새로 구하는 책들에 대한 인상을 "퇴각일기"에 적기 시작한 것은 책읽기를 차츰 가벼운 소일거리로 물려놓을 마음에서였는데,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늘어나면 "진격일기"가 되어 버리지 않을지.

 

https://www.amazon.com/dp/1108971679?psc=1&ref=ppx_yo2ov_dt_b_product_details 

 

Amazon.com

Enter the characters you see below Sorry, we just need to make sure you're not a robot. For best results, please make sure your browser is accepting cookies.

www.amazon.com

 

Posted by 문천

 

"근대국가" 작업에 착수하면서 '재3세계' 역사의 윤곽이라도 파악할 필요를 갈수록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날 필요는 오래 전부터 느껴 온 것이지만, 내 인식 역시 동아시아의 관점에 묶여 있었다는 사실을 반성하게 된다. 그러나 유럽중심주의의 해소로 살아날 것은 동아시아의 관점만이 아니다. 문명사의 기준으로 동아시아의 관점이 얼마간의 가중치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무시(내지 경시)받아 온 제3세계의 모든 전통 사이에서 적절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내 '동아시아중심주의'도 유럽중심주의 못지않은 한계와 문제점을 가질 것이다.

 

"오랑캐의 역사" 작업에서 이슬람 전통을 중시할 필요는 나름대로 제기하면서 그 윤곽을 파악하는 데 꽤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다음 작업에 들어서면서 제일 크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Sub-Saharan Africa)'다.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은 지중해세계 또는 이슬람세계의 일부로 시야에 넣을 수 있었지만, 그밖의 아프리카가 어떤 상황을 겪었는지는 깜깜하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암흑대륙'이란 말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그 동안 몇 권의 책을 구한 중에는 노예무역에 관한 것이 많고, 좋은 참고가 될 것 같기는 하지만 서둘러 읽지는 않고 미뤄두고 있다. 당장 급한 일인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데는 적절한 것이 보이지 않아서다. 그런데 어제 도착한 토비 그린의 책은 다른 책들 제쳐놓고 바로 통독할 마음이 든다. 

 

이제 서문만 읽었는데, 기대감이 치솟는다. 서아프리카 지역의 일정 시대만을 다룬 책이지만 제3세계의 역사를 바라보는 데 전반적으로 적용할 만한 관점을 잘 제시하는 것 같아서다. 예를 들어 문헌자료의 취약성에 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서아프리카 역사에 관한 문헌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아님을 나는 곧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자료들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고 체계적인 관리가 되지 않아 왔다는 것이 진짜 문제였다." 한국은 개항기나 식민지시대에 유출된 자료를 반환받기도 하고, 적어도 그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쏟아 왔다. 한국사 관계 자료를 가진 외국 기관에서도 한국을 의식하고 체계적인 정리와 관리를 한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그런 방향의 영향력이나 노력이 한국만큼 되지 못한 것 같다. 

 

https://www.amazon.com/dp/0141977663?psc=1&ref=ppx_yo2ov_dt_b_product_details 

 

A Fistful of Shells: West Africa from the Rise of the Slave Trade to the Age of Revolution: Green, Toby: 9780141977669: Amazon.c

Discover more of the author’s books, see similar authors, read author blogs and more

www.amazon.com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