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한 살 위인 혼 교수는 흑인 문제에 관한 책을 너무 많이 낸 분이라 (이제 보니 2000년 이후에만 30권이 넘는다.) 들춰볼 엄두가 잘 나지 않았다. 학문적 엄밀성보다 'political correctness'를 앞세우는 것 아닌가 지레짐작을 한 것도 그 출판 분량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한 권은 아무리 얄팍한 내용이라도 노예 문제에 대한 내 새로운 관심을 넓히기 위해 훑어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구해 봤는데, 깜짝 놀랐다. 전혀 얄팍한 내용이 아니다. 인종 문제에 대한 분노는 분명히 깔려있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제 설정의 유기성이나 고증의 철저함이 1급 연구의 기준을 충족시키고 남는다. 그 많은 책을 모두 이런 기준으로 써 왔다면 우리 세대 역사가 중 최고의 업적이라 할 것이다.

 

미국 독립혁명을 "반동혁명"으로 규정한 데 얼마간의 센세이셔널리즘을 짐작한 내 선입견도 틀렸다.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롹실히 가진 규정이다. 1776년은 유럽에서 노예제 철폐의 움직임이 가시화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노예제에 의존도가 높던 아메리카식민지가 본국에서 이탈하려는 동기에 대한 가장 확실한 설명을 어디서 따로 찾을 수 있겠는가. 다음 달의 "근대화 뒤집기"에서 노예제를 다룰 참인데, 이 책 내용을 많이 활용할 수 있겠다.

 

https://en.wikipedia.org/wiki/Gerald_Horne

 

Gerald Horne - Wikipedia

American historian (born 1949) Gerald Horne (born January 3, 1949) is an American historian who currently holds the John J. and Rebecca Moores Chair of History and African American Studies at the University of Houston. Background[edit] Gerald Horne was r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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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일전에 도착한 책 중 틸리(1929-2008)의 책은 두 가지 이유로 특히 반가웠다.

 

하나는 넓은 지역과 긴 기간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점에서 <오랑캐의 역사>를 정리할 때의 내 어려움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틸리는 역사학 교수의 타이틀을 가진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사회학자로 주로 활동했고, '역사사회학'의 중요한 공헌자로 꼽힌다. 제1장 뒤쪽에서 넓은 범위를 다루는 데 따른 문제들을 솔직히 고백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이런 문제가 있었고, 그로 인해 내 서술에 상당한 결함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넓게 보고 싶은 걸 어쩝니까!" "tongue-in-cheek"란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또 하나는 중국사에서 '무력'과 함께 '재력'을 질서에 대한 위협 요인으로 보는 내 관점과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중국사에서는 이런 관점을 깊이 파고들어간 선례가 별로 없어서, 나도 새로운 관점의 가능성으로 제시하는 정도에 그쳐 왔는데, 틸리가 유럽사에 적용시킨 사례를 잘 검토해 보면 중국사에도 적용시킬 길을 많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제5장 앞부분에서 중국 이야기를 꺼낸 곳이 있어서 먼저 살펴보니, 명-청 시대 은의 역할에 비추어 민간의 재력이 국가의 통제력을 벗어나는 현상을 추측한 내 관점과 많이 겹치는 것이었다.

 

지난 주일에 10여 권 책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에 다른 책들을 살펴보기 위해 제1장만 읽고 치워놓았지만 연변 가는 길에 꼭 가져가 읽을 책의 하나로 찍어놓았다. (9월 27일부터 약 4개월간 중국 가서 지낼 예정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Tilly

 

Charles Tilly - Wikipedia

American sociologist (1929–2008) Charles Tilly (May 27, 1929 – April 29, 2008[1]) was an American sociologist, political scientist, and historian who wrote on the relationship between politics and society. He was a professor of history, sociology,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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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

 

'노예'는 역사의 대목대목에서 역할이 컸던 존재이지만 현대인에게는 그 모습을 정확히 떠올리기 어려운 대상이다. 피라미드를 쌓던 노예에서 미국 목화밭에서 일하던 노예까지 온갖 노예의 모습 사이에는 여러 시대 여러 사회 지배집단의 모습 못지않게 큰 편차가 있었을 텐데... 제도로서 노예가 없는 현대사회에서는 노예가 추상적 존재가 된 것 같다. 노예의 역할을 크게 다룬 책은 중점을 두고 살펴 왔지만, 늘 장님 코끼리 만지는 기분이다. <엉클톰스캐빈>에서 굳어진 노예의 모습은 역사의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나타나는 노예의 실제 모습을 바라보는 데 방해만 된다.

 

오늘 도착한 패터슨의 책 서문과 2018년에 덧붙인 서문을 읽으면서 기대감이 올라간다. 역사사회학 관점에서 쓴 책인데, 그런 연구방식이 사회학계에서는 퇴조한 반면 다른 여러 분야에서 관심을 끈 데 보람을 느낀다는 2018 서문의 회고가 흥미롭다. 1980년대 이후 연구 동향의 전개에 관한 내 생각이 맞아떨어지는 현상 같아서다. 근현대 유럽인의 인식을 넘어서는 과거에 대한 시각이 떠오르는 '탈-근대'의 변화가 내가 기대하는 방향이다.

 

패터슨이 태어나 자라날 때까지도 자메이카에는 노예제도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사회의 특수계층 아닌 학생에게 학문의 길이 넓게 열린 첫 세대에 패터슨 자신도 속했다고 한다. 노예의 본질을 "social death"로 규정하는 패터슨의 관점에 기대가 가는 것은 그의 출신 환경이 노예 본인의 시각에 접근하기 좋은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Orlando_Patterson

 

Orlando Patterson - Wikipedia

Historical and cultural sociologist Horace Orlando Patterson OM (born 5 June 1940) is a Jamaican historical and cultural sociologist known for his work regarding issues of race and slavery in the United States and Jamaica, as well as the sociology of d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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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