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제주에서 동백꽃 지는 철이다. 50년 전의 4월 초에도 그랬다.

 

강요배(姜堯培) 화백의 4-3 역사화전이 ‘동백꽃 지다’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전시회의 타이틀작 ‘동백은 지다’는 꽃잎이 흐트러지지도 않은 채 통째로 ‘툭’ 떨어져버리는 동백꽃의 낙화 속에 50년 전 제주민의 수난을 그린 것이다. 민중의 수난으로 4-3의 본질을 보는 그의 시각은 6년만의 전시회에 보태는 신작 몇 점에서 더 분명히 드러난다. 한 지역의 특정한 사건으로보다 역사 전반의 비극성으로 눈길이 옮겨진 것이다.

 

역시 제주 출신의 작가 현길언(玄吉彦)씨는 4-3을 ‘미친 시대의 광기(狂氣)’라 부른다. 광기는 합리적 이해와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학술적 접근과 정치적 해법은 4-3의 참모습을 이해하는 데도, 그 상처를 아물리는 데도 한계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오히려 문학과 예술의 직관적 접근과 정서적 카타르시스에서 그는 더 긴요한 몫을 기대한다.

 

그러나 학술에도, 정치에도 그 나름의 몫은 있다. 수십 년간 4-3의 비극성을 떠올리지도 못하도록 봉쇄해 온 ‘공산폭동’론은 독재정권 시절의 유물이 되었지만 아직도 사법적으로는 그 그림자를 치우지 않고 있다. 국회의 진상조사위 구성도 의원 과반수의 발의서명을 받아놓은 채 해를 넘기며 서랍 속에서 잠만 자고 있었고, 학술적 규명도 아직 본단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50년 전의 4월 3일 새벽 5백 명 가량의 무장대가 5-10 선거 반대와 서북청년단 등 우익단체의 추방을 내걸고 제주 각지의 경찰지서를 습격한 것은 공산폭동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간 2만여 인명을 앗아간 내전 내지 학살사태 전체를 그렇게 규정할 수는 없다. 어떻게 지역주민의 10분의 1이 폭도로 소탕될 수 있었단 말인가.

 

1년간의 유혈사태도 비극이었지만, 그 슬픔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하고 지낸 4십여 년의 세월은 또 하나의 비극이었다. 피해자의 유족들은 슬픔과 억울함을 펼쳐내기는커녕 연좌제의 피해까지 겹쳐서 겪어야 했던 세월이었다. 아마 이것이 더 먼저 풀어야 할 비극일지도 모른다.

 

발발 50주년 기념행사 중 ‘해원상생(解寃相生)굿’이 특히 눈길을 끈다. 4-3은 폭동이고 항쟁이고를 떠나 하나의 참혹한 비극이었다. 시비곡직보다 비극성을 더 질실히 음미할 사건은 4-3 외에도 우리 현대사에 숱하게 많다. 살아남은 자들의 마음을 순화시키는 굿판을 바란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