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노(天皇)란 말이 처음 쓰인 것은 6세기 말, 쇼토쿠(聖德)태자가 섭정으로 정치를 행하던 스이고(推古)천황 때였다. 부족연합의 우두머리였던 그 전의 오키미(大王)로부터 율령(律令)국가의 군주로 바뀐 성격이 이 명칭에 나타난다. 그러나 천황이 실권을 발휘한 것은 불과 2백여 년, 9세기 중엽 후지와라(藤原)씨의 집권으로 천황은 그늘 속에 들어간다.

 

천여 년 후 도쿠가와(德川)막부가 쇠퇴할 때까지 천황의 존재가 부각된 고비는 이따금 있었지만, 정치구조의 변혁기에 일시적으로 주목받는 정도였지, 천황의 통치권이 실질적으로 성장한 일은 없었다. 메이지(明治)유신 때 대정봉환(大政奉還)으로 천황의 친정(親政)체제를 내세운 것도 민간신앙과 결부된 천황의 정신적 권위를 이용한 것일 뿐, 천황의 권력이 변혁을 주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1920년대 일본에서는 여러 방향으로의 정치발전 가능성이 엇갈리고 있었다. 여기서 천황제의 성격이 법률적 논쟁의 초점이 된다. 군국주의를 지향하는 국수주의자들은 국가주권이 천황에게 있다고 하는 우에스기 신키치(上杉愼吉)의 천황주권론을 지지한 반면, 자유민권론자들은 천황이 하나의 국가기관일 뿐이라고 하는 미노베 다쓰키치(美濃部達吉)의 천황기관설을 따랐다. 1935년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고 천황기관설을 금지함으로써 이 논쟁은 끝난다.

 

패전 당시 처참한 지경에 빠져 있던 일본이 십년도 안돼 기적적 부흥을 이룬 첫째 요인으로 천황제의 존속을 흔히 꼽는다. 국가의 물질적 붕괴에 잇따를 정신적 붕괴가 천황제 존속 덕분에 어느 선에서 수습됐다는 것이다.

 

일본의 국가진로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도 천황제의 성격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좌익이 천황제 철폐를 주장하는가 하면 천황에 대한 충성으로 뭉치자며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도 있다. 천황의 권위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사람들은 테러위협에 시달린다. 예나 지금이나 실권 없는 존재지만 천황제는 일본정치에서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상대국의 공식 칭호를 그대로 존중하자는 정부의 새 방침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天皇’이란 두 글자가 한자문명권에서 가진 위압적 의미, 그리고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 복종을 강요당한 경험을 생각한다면 ‘덴노’란 호칭을 우리가 쓰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사과는 스스로의 반성에서 나와야 한다. 사과받기 위한 조건으로 ‘천황폐하’를 개어올린다는 것은 엎드려 절 받기도 너무 심하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