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과 앨프레드 월리스가 진화론을 구상한 근거는 섬 지역의 생물상(生物相) 연구에 있었다. 다윈은 1831년부터 5년간 비글호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며 갈라파고스 제도를 비롯한 여러 섬 지역을 돌아보았고, 월리스는 1854년부터 12년간 말레이 군도에 살며 그 지역을 조사했다.


이들이 섬 지역에서 진화론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섬의 고립성으로 인해 종(種)의 생성과 소멸 등 진화현상이 육지에서보다 급격하고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새 몇 마리가 위협이 될만한 동물이 없는 섬에 어느 날 날아든다면 그 자손들은 차츰 날개가 퇴화하면서 여러 가지 먹이를 얻기에 적합한 모습으로만 바뀌어간다.


이렇게 섬마다 그 섬의 조건에 맞는 변종이 형성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온갖 신기한 종류의 생물을 먼 바다 속의 섬에서는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생활조건에 큰 변화가 생기면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단시간 내에 멸종의 길을 걷는 생물종이 많다.


이런 생활조건의 변화 중에는 인간이 일으킨 것도 많다. 특히 16-17세기의 대항해시대 이후 지구의 구석구석에 인간의 발자국이 이르며 일어난 변화는 수백만 년간 유지돼 오던 조그만 생태계들을 거의 모두 파괴했다. 모리셔스의 도도새를 비롯해 날지 못하는 새들의 전멸이 그 단적인 예다.


생태학자 데이비드 캐먼은 ‘도도의 노래’란 책에서 평화를 빼앗기고 멸종의 길에 내몰린 온갖 기기묘묘한 생물종들의 운명을 슬퍼하는 한편 그들의 비극이 그들에게 그치지 않고 온 지구의 생태계에 번져나가고 있음을 경고한다. 비극의 기본조건인 섬의 ‘고립성’은 이제 육지에서도 일반적 현상이 됐다는 것이다. 경작지와 산업지대에 둘러싸여 섬처럼 고립된 공원지역이나 산악지대는 자연의 흐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더 이상 자연생태계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캐먼이 지적하는 고립성의 약점은 인간사회에도 적용될 듯하다. 상당한 고등문명을 가졌던 아메리카 원주민이 유럽인의 침략 앞에 유독 참혹한 운명을 맞은 것도 비슷한 고립성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웃나라들을 멀리하고 민족조차 분단된 채 섬나라처럼 몇십 년을 지내 온 우리 사회는 고립생태계의 약점을 얼마나 가졌을까. 세계화시대에 접어들자마자 곤경에 빠진 처지에서 반성이 필요한 일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