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않은 인명이 홍수에 희생됐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유족에게 조의를 보내며 한편으로 또한 애타는 마음이 드는 것은 각지의 공원묘지에서 조상의 무덤을 잃은 사람들이다.


무덤자리를 지정한 유언만은 고지식하게 지킨 청개구리 설화에서 보듯 우리 민족은 조상의 산소를 모시는 데 정성을 들여 왔다. 시신을 매장한 장소에서 사자(死者)를 기념하는 뜻을 찾는 것은 농경민의 보편적 특징이다. 지금도 유목민 중에는 죽은 사람을 매장하되 그 장소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가축과 함께 떠나면 다시 찾지 않는 예가 많다. 농경민은 땅에 붙박여 살기 때문에 자기 위치에 강렬한 의식을 가지며, 그 위치를 자신에게 전해준 조상의 무덤은 이 의식을 표현하는 하나의 중요한 상징이라는 것이다.


유가(儒家)는 조상을 공경하고 매장을 후히 할 것을 주장했다. 검소한 매장을 주장한 묵가(墨家)와의 대립은 제자백가(諸子百家)시대의 가장 열띤 논쟁의 하나였다. 우리나라의 묘제도 유가사상의 영향으로 더욱 엄중해졌다. 16세기 중엽 성종(成宗)은 화장을 금하는 명령을 내린 일도 있다. 그러나 2백년 후 영조(英祖)때부터는 묘지의 사치를 금하는 정책이 일반화된다. 경작지가 부족하게 된 때문이었다.


인구가 1천만이던 시절 묘지의 지나친 토지점유를 걱정했는데, 7천만을 바라보는 이제 전통묘제의 유지는 불가능하다. 근년 도시인의 묘지 확보는 근교의 공원묘지에 집중해 왔다. 원래 묘지가 가지던 ‘뿌리’의 상징성은 잃어버린 채 과거 관습의 껍데기만을 지키게 해준 것이 공원묘지다.


화장을 해서 납골당이나 봉분 없는 평묘(平墓)에 모신다던가, 15년 정도의 일정기간만 분묘에 모신다던가 하는 여러 가지 묘제 개선책을 뜻 있는 단체들이 주도해 왔다. 그러나 아직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 사회지도층이 풍수에 집착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부터 작년에 선영 이장으로 구설에 오르지 않았던가.


농업시대의 유제(遺制)인 전통묘제는 산업화시대에 정리되지 않을 수 없다. 공원묘지의 붕괴는 그 신호탄이다. 풍수학자 최창조씨는 불합리한 풍수사상의 척결에 지도층이 앞장서 줄 것을 바란다. 장기이식을 위한 예약제처럼 죽은 뒤의 화장을 예약하는 제도가 널리 시행된다면 묘제개혁의 분위기가 잘 자리잡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조상의 무덤과 유골을 잃은 유족의 참담한 마음에도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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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