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독일에 유학중이던 K씨는 가끔 난처한 화제에 말려들 때가 있었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인의 개고기 먹는 풍습이 유럽에서 얘깃거리가 된 때문이었다. 자신은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개고기 먹는 풍습을 죄악시하는 것이 문화적 독단이라 생각한 K씨는 방어적인 입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더러 둘러대기를, 개구리에 식용개구리가 있듯 개에도 식용개가 있어서 생긴 것부터 먹음직하게 생겼기 때문에 너희들도 그 개를 보면 납득이 갈 것이라고 했다.


둘러대는 얘기라고 그는 한 것이지만 사실인즉 우리 전통과 부합하는 설명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개를 전견(田犬)과 폐견(吠犬), 식견(食犬)으로 구분했다. 전견은 주둥이가 뾰족하고 몸이 날랜 사냥개를 말하는 것이고 폐견은 주둥이가 뭉툭하고 잘 짖는, 집 보는 개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식견은 살이 많고 부드러워 잡아먹기 좋은 개다.


보신탕(補身湯)이라는 별칭도 유서깊은 것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삼복(三伏)조에는 마늘을 넣고 삶은 개고기가 더위를 이기는 데 좋다 하였고,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피로와 손기(損氣)를 보(補)하는 등 개고기의 효용이 여러 가지 적혀 있다. 요즘 같은 찜통더위에는 평소 별로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보신탕 한 그릇 어떨까 생각나는 것이 우리 서민문화다.


목축업은 같은 분량의 식량을 얻는 데 농업보다 몇 배 넓은 땅을 필요로 한다.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해 인구가 조밀했던 우리나라에서는 큰 가축을 많이 키울 수 없었고, 생활공간 모퉁이에 찌꺼기 음식으로 개나 닭을 조금씩 키워 특별한 때 고기맛을 조금씩 보는 음식문화를 만들었다.


개는 활동력이 강해서 대규모 목축에 적합치 않다. 어떤 사육업자가 병든 개를 시장에 넘겼다고 구속됐다지만, 천성에 맞지 않는 조건 속에 사육되는 개가 건강할 수 없다. 속내를 아는 이들은 보신탕을 ‘마이신탕’이라 부른다. 불건강한 환경 속에서 억지로 몸의 건강만 유지시키려니 항생제를 대량으로 사료에 섞어 늘 먹인다는 것이다.


항생제 투여중인 젖소의 젖은 출하하지 않고 따로 모아 버린다. 항생제 잔류 때문에 법령으로 규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고기에는 아무 규제도 없다. 규제를 단다는 사실 자체가 식견(食犬)풍습을 인정하는 것이 되어 국가 체면문제라는 것이다. 왜 체면문제인지도 납득이 안가지만, 체면 때문에 식품관리를 포기하다니, ‘눈 가리고 아웅’이 너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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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