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형은 절도범이고 신창원은 강도범이다. 절도범은 재물만을 위협하지만 강도범은 인명까지 위협한다. 살인강도가 사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는 데 비해 절도범의 최고형량이 징역 10년이다. 이 사회에서 인명이 재물보다 절대적인 존중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어려운 사람은 털지 않았다, 흉기는 절대 쓰지 않았다, 소득(?)의 3분의 1은 가난한 사람들과 나눴다고 조세형은 지금도 장담하고 있다. 검찰에서도 이에 대한 결정적인 반론은 없다. 그렇다면 그는 절도범이라도 최고형량은 선고받지 않을 만한 정상참작의 요건을 갖춘 것 같다. 그러나 15년 전 그는 절도범 최고형량에 탈옥죄까지 얹어 징역 15년을 언도받았다. 게다가 보호감호 10년도 덤으로 받았다.


법정 최고형량이 15년인 사람을 25년 묶어놓을 수 있게 한 것이 5공의 보호감호제다. 재범가능성이 있는 상습범에 적용한 것이다. 저지른 죄에 징벌을 가하는 것을 넘어서서 ‘저지를 수 있는 죄’ 때문에 인신을 구속한다는 것은 인권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형기가 만료된 상습절도범이 “난 나가서 또 도둑질할 거야” 장담하더라도 내보내주고 보는 것이 인권사회다. 정말 도둑질을 또 하면 그때 잡아들여 합당한 형벌을 주면 된다.


누구를 ‘보호’하자는 것이 ‘보호감호’의 뜻일까. 수형자 본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청송감호소의 감호조건이 일반 교도소의 행형조건보다도 열악하다는 사실이 납득이 안 된다. 결국 사회를 조세형으로부터 보호하자는 것이고, 어려운 사람을 털지 않았다는 조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어렵지 않은 사람들’이 보호대상인 셈이다.


흉기도 안 가진 조씨를 검거하면서 마구 총을 쏴댄 것이 잡는 데보다 입을 막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냐는 의혹까지 있었다. 용케 목숨을 건진 조씨가 법정최고형을 받고 그 형기를 몇 달 전 마쳤으나 보호감호 재심에서 7년 감호를 선고받아 청송으로 향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재범에서 보호해야 할 ‘어렵지 않은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일까.


“형벌이 적절치 않으면 백성이 손발 놀릴 데가 없다(刑罰不中, 民無所措手足)”고 공자는 말했다. 형벌은 너무 가벼워서도 안되고 너무 무거워서도 안 된다. 아무리 높은 분들 집을 털었다고 절도범을 강도범 취급해서는 백성의 마음이 편안할 수 없다. 살인강도 신창원이 민심에 편승할 꾀를 내는 것도 형벌이 적절치 못한 탓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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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