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이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보다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자기네 일상생활의 문제점이 얼만큼이나마 솔직하게 비쳐진 것을 보며 영화에 몰입하고 ‘늙은 여우’와 ‘미친 개’의 응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졸업한 지 오래되는 사람들은 “학교란 곳은 별로 변하지 않았구나,” 하는 감회에 잠기기도 하고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한다.


경제계의 후진적 관행이 지금의 위기사태를 불러왔다고 하는데, 관행의 후진성이 정말 엄청난 분야는 교육이다. 외교관이나 해외주재원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문제가 자녀교육이다. 꼭 선진국이 아니라도 웬만한 문명국의 학교를 다녀본 아이들이 한국의 학교에 다니려면 하루하루가 모험과 시련의 연속이다. 서울의 외국인학교에는 적지 않은 한국인 학생이 다닌다. 중산층 수입보다도 비싼 학비지만 형편 되는 부모들은 그렇게라도 해서 자녀를 야만으로부터 보호하고 싶다. 조기유학이 크게 늘어난 것도 같은 이유다.


지난 연초까지 교육방송이 방영한 ‘감성세대’는 시청자들을 교육현장에 가까이 끌어들였다는 평가와 호응을 받았지만 일각에서는 너무 아름답게만 그린 것이 아니냐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런데 독일의 ‘어린이-청소년 방송 페스티벌’에서는 이 작품에 나타난 ‘극심한 폭력과 억압, 차별’이 어떻게 현실일 수 있느냐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그 비평가들이 ‘여고괴담’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여고괴담’이 사실과 달리 학교와 교사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그렸다고 교원단체에서는 항의했다고 한다. 현실의 학교들이 작품 속의 학교와 똑같지는 않고, ‘늙은 여우’, ‘미친 개’ 같은 교사가 현실 속에서 다수는 아니다. 그러나 90% 정상적인 학교에서는 10%의 문제점이 중요한 것이고 아홉 명의 정상적 교사보다 한 명의 문제교사가 중요하다. 우리 교육의 현실과 장래는 이 10%와 한 명에 달려있다. 객관성과 정확성에 못지 않은 사실주의의 요건은 ‘문제의식’이다.


“학생들은 빈 자리만 메꾸고 숫자만 채우면 되는 존재예요.” 그러니 따뜻한 피가 돌지 않는 귀신도 그곳에 깃들 수 있는 것이고, 우리 학생들이 얼만큼씩 귀신의 속성을 띠어 가는 것이다. 학생을 아직도 번호로 관리하는 우리 현실은 유럽인의 눈에 괴담치고도 희한한 괴담이다. 어찌 생각하면 촌지기록부를 작성하고 학생을 시험기계로만 보는 일부 문제교사보다도 개혁이 두려워 그런 문제교사들까지 감싸는 교육계의 보신주의가 더 문제일지 모른다. 정말 구조조정이 필요한 분야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