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프로페셔널의 문제는 그리스의 고대올림픽에도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초창기의 경기에 참여한 것은 시간과 돈을 가진 귀족층뿐이었으므로 아마추어리즘이 지켜질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도시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자 신체조건이 뛰어난 하층민을 고용해 선수로 내보내는 일이 늘어났다. 고대올림픽 최악의 스캔들로 전해지는 것은 테살리아의 오이폴루스라는 사람이 저지른 것인데, 그는 복싱경기의 상대 세 사람에게 져달라고 뇌물을 줬다고 한다.


19세기에 들어와 스포츠가 하나의 중요한 사회현상으로 나타나면서 아마-프로 문제도 다시 떠오른다. 당시에는 아마추어 중에도 별도의 생업을 가지지 않은 ‘젠틀먼 아마추어’를 진짜 아마추어로 여겼다.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의 아버지 존 켈리는 1920년 올림픽 금메달을 딴 조정선수였지만 같은 해 영국의 권위 있는 한 조정경기에서는 건축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출전을 거부당한 일이 있다.


1910년대에서 20년대에 걸쳐 프로야구와 미식축구에서 활약한 미국의 만능선수 짐 소프는 1912년 올림픽에서 5종경기와 10종경기의 금메달을 땄지만 이듬해 박탈당했다. 그 전에 60달러의 월급으로 야구선수 생활을 한 일이 드러난 때문이었다. 그의 메달은 70년 후에야 유족들에게 반환됐다. 올림픽의 엄격한 아마추어리즘을 위선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인디안 혈통인 소프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더라면 월 60달러보다 훨씬 많은 장학금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스포츠의 상업화에 따라 이제 프로페셔널의 입지가 오히려 높아졌다. 박세리와 우승을 다툰 추아시리폰은 아마추어라서 상금은 타지 못했지만 참가경비와 골프용품 등 짭짤한 선물을 받았다. 이것도 근래에야 허용된 일이다. 1969년에는 미국 아마추어 챔피언이 골프공 여섯 타스를 제공받았다고 3개월 자격정지를 받은 일이 있다. 아직 프로테스트를 통과 못한 선수가 지금의 골프계에서는 아마추어 선수다.


“옛날 그리스인들은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전쟁을 중단했는데, 지금 사람들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올림픽을 중단한다.” 국제올림픽위원장을 지낸 애버리 브런디지의 한탄이다. 원래 스포츠란 사람들이 일상생활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든 활동이다. 그런데 상업주의와 민족주의의 각축장이 된 경기장에서 현실 중에도 치열한 현실밖에 볼 수 없게 됐으니, 현대인은 스트레스 풀기를 포기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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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