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폭격으로 전선이 태평양지역까지 넓혀지고 있던 1942년 초 미 합참의장 조지 마셜 장군은 별난 작전 하나를 지시했다. 세계 어느 곳이든 미군 PX에서는 코카콜라를 구할 수 있게 만들라는 것이었다. 덕분에 코카콜라사는 전시상황에도 불구하고 설탕 등 원료를 충분히 구할 수 있게 되고 군부의 도움을 받아 세계각지에 수십개소의 병입공장을 세웠다.


콜라는 당시까지 남부에서만 인기 있는 음료였고, 다른 지방에서는 칵테일에나 더러 넣는 정도였다. 그런데 남부출신 마셜 장군 덕분에 코카콜라가 미국의 상징물이 됐다. 원할 때 코카콜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을 병사들은 살아서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증거로 여겼다. 그리고 유럽의 참호, 아프리카의 사막, 남태평양의 함상에서 가족과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코카콜라 마시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잘 싸우고 있다고 적음으로써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려 애썼다.


역사가 짧고 민족구성이 복잡한 미국 군대에서 코카콜라는 성조기에 버금가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나라사랑을 코카콜라사랑으로 대신해 본 많은 장병들이 각지의 고향으로 돌아가 자발적 판촉요원이 되었다. 또 미군이 주둔한 세계 각지에서도 코카콜라는 껌, 초콜렛과 함께 미국을 상징했다. ‘코카콜라의 맛이 바로 자본주의의 맛’이라는 말처럼 미국의 풍요한 사회를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코카콜라는 큰 위안이었다. 공산권 붕괴 때도 코카콜라가 거리에 얼마나 나타나느냐를 가지고 붕괴의 진도를 가늠하기도 했다.


여러 해 동안 코카콜라가 가장 많이 쓴 광고문안은 ‘이것이 진짜!(The Real Thing!)’였다. 콜라의 대명사로 타사 제품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킨 말이다. 그러나 멕시코에선 이 말에 반응이 좋지 않아 그곳에서만은 ‘삶의 불꽃(The Sparkle of Life)’이란 다른 문안을 만들어 썼다고 한다. 오랫동안 정치인들에게 속아 살아 온 멕시코인들은 ‘진짜!’ 소리를 들으면 조건반사적으로 ‘웃기지 마!’ 소리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Sparkle’이란 말에는 ‘거품’이란 뜻도 있어서 IMF분위기의 한국에서는 그것도 쓰기 어렵겠다. 그런 참에 한 국내 병입업자가 코카콜라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자체기술로 원액을 만들어 ‘독립’하면서 ‘815’를 상표로 내건 것이다. 계약조건 때문에 ‘콜라’란 이름도 못쓰면서 ‘가짜’를 아예 당당히 선언한 것이 IMF시대 국민정서에 들어맞아 히트상품으로 부각되고 있단다. 세계화시대에는 이 정도면 ‘독립’ 축에 드는 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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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