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원리를 통해 인간의 경제행위를 설명했다. 완벽하고 단순한 역학이론으로 물리현상을 설명한 뉴튼 물리학을 고전물리학이라 부르듯, 시장의 합리성과 완벽성에 바탕을 둔 초기 근대경제학을 고전경제학이라 부른다.


스미스의 ‘국부론’(1776)은 19세기 내내 경제학계에서 절대적 권위를 누렸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비판이 20세기 들어 일어났다. 톨스타인 베블렌의 ‘유한계급론(1899)’은 뉴튼 역학보다 다윈의 진화론을 모델로 경제제도를 본 것이다. 그 뒤를 이은 일군의 경제학자들은 합리적 시장원리로 해명되지 않는 경제현상을 사회-문화적 제도의 관점에서 설명하려 했다.


시장의 불완전성을 강조한 제도주의 경제학은 1930년대 대공황의 예언자로 각광받고 경제학의 시야를 넓히는 공적을 남겼지만 하나의 학파로 완성되지는 못한 채 2차 대전 이후 잊혀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이후 일본을 위시한 아시아국가들의 경제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제도주의 관점을 이어받는 경제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신(新)제도학파라 부른다.


신제도학파의 화두는 시장실패(market failure)다. 시장기능이 합리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은 광범위하게 존재하며, 이런 상황에서는 거래비용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비용을 줄이고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거래를 내부화하려는 경향이 자유경쟁시장에서의 적정수준보다 규모가 큰 대기업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 관점을 연장하면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도 준(準) 내부화 현상으로 설명된다. 1960년대 이래 우리나라 조세-금융정책과 기업의 거대화에도 꼭 맞는 얘기다. 그러나 아시아 경제붕괴를 맞아서는 정부의 도덕성과 능률성이 가진 한계를 지적해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를 말하는 신(新)고전학파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경제학자 정운찬 씨는 시장이 정상을 벗어난 상황에서 정부가 최선의 정책을 찾으려 고심하기보다 차선의 정책이라도 강력히 추진하라고 권했다. 金 대통령은 화답하듯 졸속이 돼도 좋으니 개혁정책을 시급히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과도한 정부개입이 쌓아온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의 적극개입이 필요하다니 이독제독(以毒制毒)의 원리일까. 정부실패의 되풀이를 피하기 위해 비상한 도덕성과 능률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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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