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더웁고 개이다.
아침 서늘한 시간을 이용해서 <초당>의 번역을 시작하였다.
천만뜻밖의 일로 조합의 劉 金 양 서기가 치안을 방해한다는 혐의로써 제천 치안대(일본인의 무기를 인수한 경관대)에서 체포하러 온다는 소문이 있고 직원들끼리 수군수군하더니 피신하는 것이 좋다고 하므로 내가 좋도록 하겠으니 안심하라고 이르고 주재소로 나왔다는 치안대를 만나러 갔다.
마침 고개에서 이리로 오는 鄭 순사를 만나서 사유를 물으니 17일 독립만세의 旗 행렬 때 長坪으로 몰려가서 주재소를 때려붓기라는 말로 군중을 선동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의 평소의 기질로 보아 그럴 리도 없으려니와 만일에 그러한 일이 있었더라도 나의 불민한 소치이니 내가 책임을 질 것이요, 기어이 뉘길 잡아가야겠거든 나를 잡아가라고 했더니 그러면 나에게 사건을 맡기겠다 하므로 저으기 안심할 수 있었다.
일부 직원 중에서 다른 곳 금융조합은 전부 문을 닫고 일을 보지 않으니 우리도 그리하자는 발언이 있었으나 이 과도기가 언제까지 계속할지 모르는 일인데 무턱대고 노는 것이 불가할지며 또 이것이 난리가 아니고 우리가 앞으로 더 룰륭하게 살아가자는 판국이니 새 명령이 내릴 때까지 질서정연하게 일을 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직책일지며 또 예금자에 대해서도 현금의 제약으로 요구를 전적으로 酬應하지는 못할망정 그 사유나 곡진하게 일러주고 또 꼭이 절박한 사정이 있으면 다문 얼마라도 보아주는 것이 좋지, 아주 문을 닫아버리면 일반의 불편이 많을 것이며 더욱이 남의 조합이 그러하다고 함부로 거기 추수할 필요는 없으니 우리는 평정한 마음으로 일을 보아 가자고 일렀다. 이 지방만 하더라도 다른 모든 기관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기능이 정지되어 있는 이때 우리가 이렇게 안온하게 복무할 수 있는 것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오전의 국민대회에 나갔더니 일부에서 기어이 나의 출마를 요청하고 위원장의 후보로 세웠으므로 나는 이 지방 사정에 몽매할뿐더러 그 그릇이 아니니 추천을 사퇴하겠다고 발언했으나 면과 면민을 위해서 초지를 굽혀달라는 등 물의가 많아서 대회의 대 파란을 자아내었다. 나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비추어보아서 본인의 辭避를 무시하고 억지로 입후보시키는 법이 없으니 東震공화국에 있어서의 민주주의의 옹호를 위해서도 내 의사를 존중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낮에 李光鎬 군이 찾아왔다.
아부지의 글월 – 久霖快霽, 喜氣新生
오후엔 광호 군과 여러 가지 이야기.
간밤에 전 순사 林淳敬 씨도 와서 개탄하는 모양이었지만 최근 여러 사람이 치안의 문란에 대해서 민족의 소질을 운위하는 바 있었으나 나는 그때마다 세계 어느 민족의 역사를 들치더라도 이처럼한 정치의 진공 상태에 놓여서 이만치 질서정리한 예는 별로 없으니 나는 이 점에 대해서 비관은커녕 낙관하는 바이며 40년 行惡한 저네들의 퇴장에 있어서 가지가지 인정에 넘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음은 조선사람의 천성이 순하듸 순한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해방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45. 8. 19 (0) | 2024.11.01 |
---|---|
1945. 8. 18 (0) | 2024.10.30 |
1945. 8. 17 (0) | 2024.10.27 |
1945. 8. 16 (3) | 2024.10.26 |
연구서에서 교양서로 넘어왔으면... / 정병준 <1945년 해방 직후사> 리뷰 (1) | 2023.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