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육지면적은 2백여만 평방km, 한반도의 열 배 가까운 큰 나라다. 그러나 이 나라의 진짜 크기는 바다에 있다. 수마트라에서 뉴기니아까지 적도를 따라 펼쳐진 인도네시아의 영역은 미국 본토와 맞먹는다. 동쪽 끝에서 해가 뜬 세 시간 후에야 서쪽 끝에 해가 뜬다.


만여 개 섬 중 사람이 사는 것만도 1천을 헤아린다. 넓은 영역에 많은 섬들이 널려 있으니 당연히 인종과 언어, 문화와 종교가 큰 다양성을 보인다. 자바 섬 동쪽으로 티모르 섬까지 고구마줄기처럼 나란히 늘어선 섬들에서 이 다양성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자바 섬 바로 옆의 발리 섬은 철저한 힌두교 지역, 그 옆의 롬복 섬은 힌두교와 이슬람이 섞인 곳, 다음의 숨바와 섬은 철저한 이슬람이다. 그 다음의 플로레스 섬은 카톨릭이 지배적이고 끄트머리의 티모르 섬은 개신교 우세지역이다.


이렇게 자연적-문화적으로 통일성이 약한 섬들이 어떻게 하나의 나라를 이룰 수 있었을까. 사실 16-17세기에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세력이 진출할 때까지 이 해역에는 대규모 정치조직이 없었다. 동인도회사 활동으로 시작한 네덜란드 식민지배가 인도네시아 국가의 틀이 됐다.


이 틀을 지키며 새 국가를 만든 것이 수카르노(1901-70)의 공로였다. 1920년대 후반부터 민족주의 지도자로 나선 수카르노는 어학의 천재였다. 자바어, 순다어, 발리어 등 주요 토착어와 아랍어, 네덜란드어, 영어, 독어, 불어 등 인도네시아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언어를 학생시절부터 익혔다. 후에는 일본인 부인까지 두고 일본어를 배웠다. 독립 후 공용어가 된 인도네시아어를 만드는 데도 그의 공헌이 컸다.


뛰어난 창의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수카르노는 거대한 해양국가를 만드는 창업(創業)에 성공했지만 안정된 발전의 길을 여는 수성(守成)에 실패했다. 그의 독선적 정책노선은 60년대 초의 경제파탄을 몰고 와 정권전복으로 이어졌다. 1967년 정권을 탈취한 수하르토가 30년 독재 끝에 쫓겨난 뒤 인도네시아의 국체(國體)가 어떻게 지켜질지 궁금한 일이다.


유럽을 대항해시대로 끌어들인 향료의 땅 동인도제도가 바로 인도네시아였다. 엄청난 자원과 인구, 그리고 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사이를 가로지르는 그 지리적 위치는 잠재적으로 큰 전략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식민지배와 독재체제에 묶여 있던 이 전략적 중요성이 앞으로의 세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21세기의 큰 변수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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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