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동안 많은 시청자의 주목을 끈 ‘용의 눈물’이 이번 주말로 대미를 맞는다. 그 성공은 여러 가지 요소가 얽힌 결과겠지만 비슷한 제작비를 들이고 역량도 뒤지지 않는 연출-출연진이 만드는 다른 사극과 비교한다면 극본의 작품성이 가장 큰 강점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빤한 줄거리의 역사를 놓고 이면의 곡절을 엮어내기 급급한 통상적 사극과 달리 ‘용의 눈물’은 우리 역사의 큰 고비였던 조선건국의 과정을 적극적으로 해석으로써 사극의 진짜 재미를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는다. 대선을 앞두고 현실 권력문제와의 사이에 많은 비유를 불러일으켜 흥미를 증폭시킨 것도 권력을 사실적으로 다룬 결과라 할 수 있다.


중등과정까지의 역사교육을 통해 대부분의 학생은 고려가 쇠약해지자 힘을 가진 신하 이성계가 나라를 빼앗았다는 정도, 얼마 후 품성이 빼어난 임금 세종이 나타나 문화의 황금시대를 열었다는 정도의 인식을 가진다. 졸업 후 취미로 역사책을 찾아 읽는 사람도 권력투쟁의 뒷얘기를 좀 더 소상히 알게 되는 정도가 보통이다. 역사는 역사일 뿐, 현실 인식에 별 도움을 못 주는 풍토에 ‘용의 눈물’은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조선 건국이 단순한 왕조교체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맞춘 정치구조의 발전이라는 측면, 이를 둘러싼 ‘피의 역사’가 단순한 권력투쟁이 아니라 새로운 통치구조를 빚어내는 과정이라는 관점은 시청자들을 역사의 현장에 깊이 끌어들였다. 정도전 음모설 등 더러 석연치 않은 대목도 있지만 정사(正史) ‘실록(實錄)’의 기록에 충실히 따르면서 야사(野史)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로 보완한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용의 눈물’ 신드롬을 바라보는 역사학자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모처럼 실감나는 역사를 보여주는 사극의 출현이 한편으로 반갑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백수십억의 제작비를 들여 너무나 ‘실감나게’ 만드는 이런 작품이 시청자의 의식을 압도해 버림으로써 역사를 보는 국민의 시각을 한 방향으로 고착시켜 버리지나 않을지 염려하는 것이다.


이런 걱정을 벗어나는 길이 있다. ‘용의 눈물’ 못지않게 힘 있고 재미있는 사극이 계속 나온다면 시청자들은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더 깊이 느끼는 가운데 훌륭한 역사의식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역사의식을 걱정하는 학자들이 연구성과의 보급에 적극 나서도록 ‘용의 눈물’이 자극을 준다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성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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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