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화대를 받으라고?”

정신대 피해자 이옥금 할머니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이 ‘위로금’을 주겠다는 제안에 화를 내신다. ‘여성기금’으로 통상 불리는 이 기금은 지난 95년 아시아 각국의 정신대 피해자들에게 일본국민의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본 ‘민간단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가 차원의 사죄와 배상 요구를 얼버무리기 위해 만든 관변단체이기 때문에 작년 유엔 인권소위원회에서도 여성기금의 활동에 대한 비난이 있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우리나라 정신대 피해자는 1백5십여 명. 그중 7명이 작년 초 여성기금의 돈을 받았다. 이옥금 할머니는 떳떳치 못한 이 돈을 결코 받으려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돈 받은 할머니들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 돈이나마 받아야 하는 할머니들이 불쌍하고, 그 할머니들을 그런 처지에 두는 우리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민단체들이 열심히 모금운동을 폈지만 ‘여성기금’이 주겠다는 1인당 5백만 엔의 유혹을 물리칠만한 성과는 거둘 수 없었다. 지난 달 정부가 49억 원의 지원금을 지급함으로써 비로소 할머니들이 3천여만 원씩을 손에 쥐게 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부의 태도는 석연치 않았다. 일본 정부의 배상을 정부 차원에서 요구하지 않겠다는 방침이 청와대의 사전브리핑으로 나오고 일본정부에도 전해졌다. 국무회의에서 이 방침이 삭제된 뒤에도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하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여성기금을 거들어 돈으로 피해자들의 입을 막으려 드는 꼴이다.


‘지원금’이라는 이름부터 여성기금의 ‘위로금’과 같은 차원이다. 대만정부는 작년 봄 피해자 30명에게 3만7천 달러씩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일본정부가 지불할 보상금을 대신 지급해뒀다가 나중에 일본정부에게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일방적 양보로 ‘도덕적 우위’를 점한다고 큰소리치지만 오히려 ‘도덕적 해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본 우익은 일본 교과서에서 정신대 관계 내용을 줄여야 한다고 목청을 돋우고 있다. 우리 교과서의 정신대 관계 내용이 일본 교과서의 절반도 안 된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면 얼마나 기고만장할 것인가. 외교통상부는 오랫동안 써 온 ‘일왕(日王)’ 대신 ‘천황(天皇)’의 호칭을 쓰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일본의 우익 중에도 극우파가 건너와 우리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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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