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전국역사학대회가 ‘통일과 역사교육’을 공동주제로 열렸다. 개방된 학술회의에서 통일과 관련된 주제를 다룰 수 있게 된 데서 학자들이 느낀 금석지감은 한총련 출범식으로 인한 대회장 주변의 삼엄한 경비 때문에 더욱 두드러졌을 것이다. 아무튼 심중(深重)한 주제의 성격 때문에 발표와 토론은 여느 학회와 다른 긴장과 열기 속에 이어졌다.


네 편의 주제발표에서는 통일을 염두에 둔 한국사의 연구와 교육 문제 외에 1920년대 중국과 통일을 전후한 독일 역사학계의 통일문제 의식이 소개됐다. 민족의 분단과 통일이 역사 자체의 큰 흐름일 뿐 아니라 역사의식의 기본조건이 된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에 우리 역사학계가 마주하고 서게 된 것이다.


참여한 학자들의 고민은 ‘민족주의’에 집중된다. ‘통일’의 명제는 당연히 ‘민족’의 개념에 달려 있다. 통일을 생각하고 말하는 것부터 민족주의에 속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분단 주체들은 자기 식 민족주의를 분단의 논리로 활용해 왔기 때문에 어떤 뜻에서는 민족주의가 분단 극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에는 민족주의 역사교육이 없었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했다”고 하는 한 토론자의 소개가 이런 딜레머를 보여준다.


독재에 이용돼 온 ‘타락한’ 민족주의 대신 민주주의 이념과 연계되는 ‘진정한’ 민족주의를 빚어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힘이 없었다. 무엇이 진정한 민족주의냐를 따지는 대립의 과정을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화의 시대에 과연 민족주의가 얼마나 힘있는 담론(談論)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참가자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그러나 당면한 통일이 강제적 흡수통일이 아니라 자발적 대등통일이 돼야 한다는 공감대는 분명했다. 따라서 두 체제의 접합 자체보다 각각의 체제 내에서 분단과 대립의 요인을 해소하는 작업이 앞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마지막에 방청석에서 나와 여운을 남긴 질문 하나는 해외의 교민사회에서 통일의 노력을 펼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민족에는 속하면서 국가에는 속하지 않는 해외동포들은 국내거주자들보다 공정한 입장이다. 훌륭한 조국을 가지고 싶어하는 이들의 염원이 통일방안의 결정과정에 잘 반영되기 바란다. 또한 조국을 잘 알고 싶어하는 이들의 순수한 소망에 부응하는 방향과 내용의 역사교육이 바로 통일된 민족을 위한 역사교육의 길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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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