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고대봉건제에서 지배계층, 즉 제후(諸侯)와 대부(大夫)를 군자(君子)라 했고 피지배계층, 즉 서인(庶人)을 소인(小人)이라 했다. 군자와 소인은 말하자면 정치사회적 계급의 호칭이었던 것이다.


예기(禮記)에 “형벌은 대부에게 미치지 않고(刑不上大夫) 예법은 서인에게까지 내려가지 않는다(禮不下庶人)”고 한 것도 신분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사회질서의 원리가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피지배계층이 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통제되는 반면 지배계층은 명예를 아끼는 마음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공자는 도덕성을 기준으로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는 관점을 세웠고, 군자와 소인은 도덕적 계급이 되었다.


10세기에 세워진 송(宋)나라는 종래 왕조의 직접적 인신(人身)지배와 달리 관료집단 중심의 통치구조를 만들었다. 새로운 지배계층으로 떠오른 사대부(士大夫)집단은 이념에 따라 정치적 태도를 결정하는 스스로를 군자로 자처하면서 정치이념과 무관한 피지배계층을 소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같은 지배계층 속에서 자기 뜻에 맞지 않는 부류를 사이비(似而非) 사대부라는 뜻에서 소인으로 규정했다.


의리(義理)를 추구하는 군자의 모임인 붕(朋)과 이익을 좇는 소인들의 모임 당(黨)을 구분해서 보는 구양수(歐陽修)의 붕당론(朋黨論)은 지배계층의 붕당현상이 정치구조의 한 중요한 부분이 되었으며 순기능과 역기능을 아울러 드러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좋은 붕당은 훌륭한 정치를 가져오지만 나쁜 붕당은 정치를 망치는 최대의 원흉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정치를 얘기할 때 ‘당쟁(黨爭)의 폐해’를 누구나 먼저 떠올리는 것은 일제 식민사관이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가 심어준 통념대로 조선 정치사가 소모적-파괴적 당쟁사 뿐이었다면 그 나라가 어떻게 5백년이나 버틸 수 있었겠냐고 당쟁사 연구가 박광용 교수는 반문하며 선인들이 추구한 군자정치(君子政治) 이념의 계승이 현실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한다.


오늘의 정당들은 도덕성을 강조한 동양정치의 전통도, 정책노선을 추구하는 서양정치의 원리도 일체 아랑곳 않는 것 같다. 지방대의원의 양식을 못 믿어 중앙당의 공천심사권을 강화하는 여당이 세(勢)불리기를 위해 지구당을 조정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권력과 이익을 따라서만 정당이 움직인다면 민주주의는 어느 곳에 깃들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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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