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신화 중의 삼황(三皇) 즉 복희(伏羲), 신농(神農), 수인(燧人)을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으로 흔히 풀이한다. 고기잡이와 농경을 상징하는 복희씨, 신농씨보다 화식(火食)을 상징하는 수인씨가 인간을 대표한다는 배역은 인류문명에서 불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그리스신화에서 문명과 불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은 프로메테우스다. 반신반인(半神半人)의 타이탄 족(族)으로 ‘선각자(先覺者)’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신을 속이는 꾀를 가르쳐주었다. 이에 분노한 제우스가 인간에게서 불을 빼앗아가자 이것을 다시 훔쳐 인간에게 되돌려줌으로써 제우스를 더욱 분노케 하였다.


제우스는 두 갈래 처벌을 내렸다. 인간에게는 판도라의 상자를 통해 여러 가지 죄악과 노고, 질병 등 온갖 재앙을 보내는 한편 프로메테우스를 쇠사슬로 산꼭대기에 묶어놓고 독수리로 하여금 그 간을 영원히 쪼아먹게 하였다고 기원전 8세기의 시인 헤시오드는 전한다. 한편 그 2백 년 후의 비극작가 에스킬로스는 ‘프로메테우스의 속박(束縛)’에서 그를 모든 과학과 기술의 전파자로 그렸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연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인류문명의 출범을 상징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근대산업의 발달을 ‘프로메테우스의 해방’이라 부르는 것도 이 상징성을 연장한 것이다. 수천 년간 완만하게 발전해 온 인간의 문명과 기술이 2백여 년 전부터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연료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프로메테우스가 쇠사슬을 풀고 인간 곁에 돌아와 마음껏 재주를 가르쳐주는 시대였다.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의 고삐 풀린 행각을 얼마 전부터 불안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신의 견제 없이 일방적으로 자연을 정복해 온 2백년 동안 개체수를 다섯 배로 늘린 인간의 놀라운 번성은 프로메테우스 덕분이다. 그러나 화석연료가 앞으로 5십 년이면 바닥이 난다고 한다.


정부가 검토중인 고유가(高油價) 정책에 대한 일전 SBS의 시청자반응조사에 60% 이상이 반대를 표했다. 세계의 연료가격체계가 미국주도형 산업-경제구조에 맞춰 너무 낮게 형성돼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우리 경제사정에 겹쳐서 생각한다면 고유가 정책은 여러모로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프로메테우스의 인기가 여전하다. 제우스의 세 번째 분노가 언제 어떤 식으로 터져 나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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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