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부성(文部省)은 많은 외국인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며 일본에 불러들인다. 대학원생에게는 통상 월 17만 엔(약 2백만 원)의 생활비를 장학금에 포함해 준다. 우리 유학생들에게도 혼자 쓰기에는 넉넉하고 아껴 쓰면 단촐한 가족까지 부양할만한 금액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70년대 이래 많은 유학생을 국비로도 일본에 보내 왔는데, 국비장학생의 생활비는 문부성장학생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국비장학생들은 문부성장학생들을 ‘가네모치(부자)’라 부르며 부러워하고, 같이 식사를 하면 얻어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최저생계비에 까마득히 못 미치는 돈으로 생활해 내기 위해 그들은 온갖 지혜를 짜낸다. 필수품인 자전거(가장 싼 교통수단)와 텔레비전(가장 싼 일본어 습득수단)을 중고품으로 싸게 사거나 아니면 버리는 물건을 주워 고쳐 쓰려면 어떤 시간에 어떤 곳으로 가야 하는지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돈 안 들이고 사는 방법은 그들 사이에 기본 노하우로 전파되고 전승된다.


고급 노하우 중 하나가 기차 타는 요령이다. 오사카 지역과 도쿄 사이는 대부분 유학생이 여러 번씩 다녀야 하는 길이다. 신칸센 요금은 왕복에 3만 엔 가까이 된다. 야간버스도 2만 엔 정도다. 월 6-7만 엔으로 생활하는 유학생들에게는 엄청난 거금이다.


일반열차를 이용하면 1만 엔 이하로 왕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의 열차시간표는 신칸센 구간을 일반열차로 대치하기 어렵게 짜여 있다. 갈아타는 시간이 안 맞도록 만들어 비싼 신칸센을 여행객들에게 강요하는 얄팍한 술책이라고 비난도 받는다. 그런데 유학생들은 시간표를 철저히 연구해 신칸센으로 세 시간에 갈 거리를 24시간 내에 싼 값으로 가는 ‘틈새’가 매주 두어 차례 있다는 것을 용케 찾아내 활용한다.


신칸센의 도쿄-오사카 구간은 1964년 도쿄올림픽에 즈음해 개통됐다. 오사카에서 후쿠오카까지의 연장구간은 1975년에야 개통됐다. 도쿄에서 니이가타와 모리오카로 향하는 북방선들은 1982년에 완성됐다. 튼튼한 국가경제를 배경으로 자기 기술을 가지고도 수십 년 걸린 사업을 우리는 반짝경기를 틈타 빌려온 기술로 넘어서겠다고 설쳤다. 힘들여 만든들 서민들은 고속철 피해 다니는 길을 찾아 열차시간표를 연구하게 되지나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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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