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물의 날에 제주에서는 ‘수자원의 공(公)개념’ 선언이 있었다. 지질조건 때문에 지하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제주도에서 근년 물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하수의 무분별한 채취를 억제할 필요가 절실해졌다. 이 필요는 지난 가을 가뭄 때 지하수 수위가 내려가면서 새삼 확인됐다.


제주도 당국은 이 공개념을 수자원 가격체계에 반영시키려 한다. 독립관정에서 물을 뽑아 쓰는 업자들에게는 원수(原水)값을 현행 톤당 150원 선에서 점차 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물 소비의 주종인 수돗물에는 손을 못 대고 있다. 물가를 자극할까, 서민이 반발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도 당국이 각 시군에서 받는 원수값 톤당 78원은 시설비와 운영경비일 뿐, 진짜 물값은 여기 들어있지 않다.


공개념 선언이 현실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까닭이 이것이다. 수자원이 공유재산으로 인식된다면 그 소비를 위해서는 채취를 위한 비용뿐 아니라 공유재산의 소진(消盡)을 보상하는 가격까지 지불해야 한다. 그래야만 소비도 적절한 선에서 억제될 수 있고 자원의 소진을 보전하기 위한 비용도 충당될 수 있다.


재화의 가치를 결정하는 한 축이 희소성이다. 아무리 효용성이 큰 물건이라도 무제한 널려있는 것이라면 시장가치가 붙지 않는다. 고기가 물 고마운 줄 모르듯 인간은 공기가 고마운 줄 모르고 수십만년간 살아 왔다. 그런데 이제 맑은 공기도 포장해서 팔아먹는 세상이 되었으니 기본자원의 공개념을 심각하게 생각해야겠다.


교통세 인상방침 역시 자원과 환경의 관점에서 평가할 면이 있다. 유류의 과도한 소비는 국제수지와 환경 양쪽에 부담이 된다. 그 부담을 보상하기 위한 재원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과도한 소비를 억제하는 방향이라면 적절한 조세정책이라 할 수 있다. 유류가격 인상이 산업을 위축시키지 않을까 걱정도 하지만 제반산업의 원가상승이라는 손실보다는 불필요한 소비의 절약이라는 이익이 더 클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자동차 10부제 발상은 불안하다. 자동차는 아무리 많아도 괜찮고 운행만 줄이면 된다는 생각일까. 병의 근원을 방치한 채 진통제로 증세만 잡고 있어서는 병이 더 나빠지기 십상이다. 소유자들이 운행을 스스로 줄이도록 이끄는 조세정책과 달리 물리적 규제력으로 운행을 막는 행정정책이 얼마나 좋은 효과를 바라볼지 의문이다. 일시적 여론에 편승한 무리한 정책의 시행은 지나간 시대와 함께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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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