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만 쳐다보며 살면 저렇게 해맑은 마음을 가질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후루카와 기이치로(古川麒一郞) 선생을 보면 하게 된다. 애연가인 선생은 국제회의장에서 조그만 사탕깡통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쉬는 시간에 정원에서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그 깡통을 꺼내 재떨이로 쓴다.


천문학자 후루카와 선생은 십여 년 전 한일과학사회의에 참석하러 한국에 왔다가 한국에 반해버렸다. 그 후로 웬만한 학회가 한국에서 있다 하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온다. 형편이 되면 부인과 딸 등 가족도 데리고 온다. 그리고 적당한 상대만 있으면 한일관계사 얘기를 하려 든다. 아마추어 수준의 식견이지만 그 진지한 태도에는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세종(世宗)의 천문학 분야 업적을 다루는 5년 전의 학회에 참석했던 후루카와 선생이 작년 동료학자를 설득해 새로 발견한 소행성에 ‘Sejong’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소식을 흐뭇하게 들었다. 그런데 자신이 발견한 소행성에도 ‘Kanroku’라 이름을 붙인 소식을 뒤늦게 들으니 한국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족히 알 만하다.


‘Kanroku’라면 관륵(觀勒)의 일본식 발음이다. 관륵은 무왕 3년(602) 일본에 건너가 불교를 전파한 백제 승려로, 천문역법을 비롯해 여러 기술분야도 아울러 전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를 일본 천문학의 시조로 보는 것이 애한파(愛韓派) 천문학자 후루카와 선생의 관점이다.


태양계에는 아홉 개의 행성 외에도 태양을 중심으로 선회하는 소행성들이 많이 있다. 소행성은 계속 발견되고 있으며, 발견자가 이름을 짓는 것이 천문학계의 관행이다. 아직 한국인의 발견은 없는 것이 유감이지만 후루카와 선생 덕분에 한국인 이름의 소행성은 가지게 되었다.


소행성에 거듭 한국인 이름을 붙이는 까닭을 묻는 기자에게 “과거 역사에 대한 죄송한 마음에서”라고 대답한다. 그는 창씨개명을 특별히 염두에 뒀을지도 모른다. 그가 한 번 창씨개명의 의미를 열심히 물은 일이 있다. 17세기에야 성씨를 정비한 일본인으로서는 이에 대한 한국인의 격렬한 반감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가문을 절대적으로 중시하던 우리 문화전통에서 ‘성을 바꾼다’는 것은 극단적인 모욕이다. 그러나 북풍(北風) 관련 의혹을 받는 한 정치인의 “의혹이 사실이라면 성을 갈겠다”는 장담을 보면 이 전통도 많이 흐트러진 듯하다. 옛날 같으면 이런 말은 입에 담기에도 훨씬 더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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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