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볼로냐에 세계최초의 대학이 세워진 것은 11세기말의 일로 전해지지만, ‘universitas studii’라는 이름으로 널리 제도화된 것은 13세기의 일이다. 오늘날까지 ‘university’ 등으로 남아있는 이 이름은 초창기의 대학이 보편적 진리를 탐구하는 기관이었음을 말해준다.


중세 후기에서 르네상스기에 걸쳐 학문과 고등교육의 본산으로 자리잡은 대학은 근세에 접어들며 몇 차례 변화의 물결을 겪는다. 첫 물결은 계몽주의 사조 속에서 종교 중심의 틀을 벗어나 이성(理性)을 새 원리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 진리를 추구한다는 대학의 기본목적은 이 단계까지 바뀌지 않고 있었다.


19세기 국민국가의 발달에 따라 대학이 민족문화의 아성으로 자리잡는 두 번째 물결이 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각국의 문화적 특성을 체계화하고 재생산하는 기능을 대학이 떠맡은 것이다. 2차 대전 때까지 치열하게 전개된 국가경쟁의 시대에 대학은 보편적 진리보다 고유한 국가이념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학이 외부조건에 지배당하기보다 내부논리에 따라 국가사회를 이끌어갔다는 점에서 이 시기를 대학제도의 전성기로 보는 시각이 있다.


같은 시각에서 본다면 국가간의 경쟁이 퇴화하면서 대학인의 관심이 문화적 특성에서 수월성(秀越性)으로 옮겨가는 20세기 후반은 대학의 쇠퇴기라 할 수 있다. 수월성이란 고유의 가치기준 없이 계량적으로 파악되는 개념이다. 사회의 요구에 따라 유능한 인재와 유용한 연구성과를 능률적으로 생산해 내는 것이 이 시대 대학의 과제가 되었다.


대학의 성격변화는 대학교수의 모습도 바꿔 왔다. ‘이성의 대학’에서 교수는 진리의 탐구자로 존경받았다. ‘문화의 대학’에서 교수는 국가사회의 지도자로 숭앙받았다. ‘수월성의 대학’에서 교수는 전문직 종사자로서 평가받는다. 각자의 능력과 업적에 따라 존중받을 뿐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위상은 60년대까지 ‘문화의 대학’ 단계에 있었다. 능력보다 지성인으로서의 자세가 대학교수의 권위를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그후 그 권위는 알게 모르게 무너져 왔지만 이를 대치할 수월성의 원칙은 아직 제대로 세워지지 못하고 있다. 임용에 금품을 주고받고 학내분규를 법정에 끌고 다니는 민망한 모습들을 보며, 교수를 권위보다 능력으로 평가하고 존중하는 시장논리의 새 대학풍토라도 어서 자리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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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