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노동자가 하나의 계층으로 형성된 것은 산업혁명의 결과다. 그 전의 경제활동은 농장과 점포 등 소규모 자영업을 통해 이뤄졌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농촌에서는 자본가들이 기계력을 투입해 적은 일손을 쓰는 대단위 생산체제를 만들었고, 이에 따라 농촌에서 터전을 잃은 영세농민은 도시로 흘러들어 대규모 생산공장의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소규모 자영업에 종사하던 시절에 비해 임금노동자는 상당한 수준의 안정을 얻었다. 홍수와 가뭄을 걱정할 필요 없이 생계비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기아와 질병에서 차츰 벗어나게 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 평균수명이 연장된 추세에서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안정의 대가로 그들은 자유를 잃었다. 기계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움직여야 할 뿐 아니라 생각이나마 자기 생각에 빠져 있다가는 사고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일과 휴식의 경계선이 칼날처럼 엄격해져서, 근무중에는 그 몸조차 회사의 재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산업혁명 초기의 노동조건은 매우 가혹했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자리잡히는 데 따라 그 조건은 꾸준히 개선돼 왔다. 개선의 방향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임금노동자 신분의 장점인 안정성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위협을 가능한 한 완화하는 것이었다.


노동조건의 개선이 선진국에서 원활하게 진행돼 온 데는 선발주자의 유리함이 주는 여유가 작용했다. 그러나 근년 후발국들의 도전이 거세지면서 종래의 복지정책이 오히려 퇴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고용시장의 탄력성을 고용의 안정성보다 앞세우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십여 년 전부터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경영재구성(reengineering)’은 노동자들에게 자유의 회복을 약속한다. 한 가지 작업(task)에만 묶여 있던 노동자로 하여금 하나의 과정(process)에 책임과 재량을 가지고 임하게 함으로써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작은 사업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자유 회복의 대가는 안정성의 철회다.


선진사회에서 경영재구성이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는 것은 노동조건이 안정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조건을 향상시키려는 참에 IMF 사태를 맞았다. 노동신분보장이라는 장기적 과제와 위기극복이라는 단기적 과제 사이에서 노동문제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사정위원회에 임하는 노측의 고충에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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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