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6천5백만 년 전, 백악기 말기의 지구는 공룡의 세계였다. 이 거대한 파충류는 그때까지 1억6천만년간이나 지구의 표면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공룡이 사라졌다. 공룡의 퇴장에는 불과 백만 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백만 년이라면 지질학상 ‘눈 깜짝할 순간’이다.


공룡의 급격한 절멸(絶滅)은 오랫동안 지질학계의 큰 수수께끼였다. 이 수수께끼에 가장 그럴싸한 해답을 십년 전 버클리 대학의 루이스 알바레스 교수가 제시했다. 소행성의 충돌에 따른 충격 때문이라는 것이다. 백악기가 끝나는 시점의 지층을 연구한 결과 이 소행성의 직경은 직경 11km 정도였으리라고 알바레스는 추정했다.

직경 11km짜리 소행성의 충돌은 현존하는 핵폭탄을 모두 합친 것보다 몇십 배의 위력이다. 먼지와 파편이 대기권을 채워 1년 동안은 햇빛이 지구표면에 이르지 못했고, 따라서 광합성이 거의 중단되는 등 엄청난 충격이 생태계에 닥쳤다. 이 충격의 여파 속에 공룡은 사라지고, 아직 진화의 초기단계에 있던 포유류가 살아남아 그 공백을 메우게 됐으리라는 것이다.


포유류는 견뎌낸 충격을 왜 공룡은 견뎌내지 못한 것일까. 생물학자들은 ‘전문성’의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평상상태에서 다른 동물의 위협을 받지 않던 공룡은 제한된 종류의 먹이만을 취하는 습성을 키우고 있어서 생태계의 기본조건 변화에 적응할 여지가 적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여당은 집권자의 그늘 속에서 몸집만 키워온 공룡이다. 한나라당이 현직 대통령의 탈당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한지는 한 달 남짓 됐지만 역시 다음 대통령의 배출에 희망을 걸고 버텨 왔다. 이제 그 희망마저 잃은 상황에서 새로운 위치에 새로운 자세를 갖출 수 있을지, 한국 정치발전의 시금석으로 관심을 모으는 일이다.


공룡의 고민은 한나라당만의 것이 아니다. 경제대국의 자만심이 금융공황의 충격 속에 적응의 방향을 잘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것은 국가 전체의 명운이 달린 문제다. 더 크게 보면 ‘엘니뇨’현상을 둘러싼 근년의 갖가지 이상기후는 인류 전체의 명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변화 속의 적응이 모두에게 절실한 과제가 돼가고 있다. 한국 최대의 정치조직인 한나라당의 건강한 생존 여부는 그래서 더더욱 관심이 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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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