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지 워싱턴이 소년시절 벚나무를 꺾었다가 불같이 화를 내는 아버지 앞에 자수해서 아버지를 감동시켰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윔스라는 목사가 쓴 전기에 나오는 것인데, 그 전기의 1800년 초판에는 없고 1806년의 제5판부터 실려 있다. 후세 사가들은 윔스의 워싱턴 전기에 사실이 아닌 설화를 지어낸 것이 여러 개 들어있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벚나무 꺾은 얘기도 그중 하나다. 정직성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거짓으로 지어낸 것이라니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지어낸 얘기가 미국사회에서 널리 믿어진 것은 정직성을 극도로 중시하는 청교도적 분위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는 세상이 완전히 바뀐 아직까지도 얼만큼 남아있다. 거짓말은 여늬 범죄(crime)와는 차원이 다른 죄악(sin)으로 통한다.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미국사회에서 거짓말쟁이(liar)라는 말은 아직도 치명적인 욕설이다.


거짓말에 대한 그런 결벽증을 워터게이트 사건 진행에서 여실히 볼 수 있었다. 닉슨의 치욕적인 하야는 도청 때문이 아니라 그를 은폐하는 과정에서의 거짓말 때문이었다. 도청만이 문제였다면 지금 클린턴이 하는 것처럼 법정에 오가며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도 있었다.


동양인들은 거짓말에 대해 훨씬 관대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는 “거짓말도 방편(方便)”이라는 속담이 있으며, 중국 병법에서는 “군사(軍事)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兵不厭詐)”고 했다. 우리 속담에도 “거짓말이 외삼촌보다 낫다” 한 것을 보면 이웃나라들보다 더 엄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기독교 전통에서 이 차이의 원인을 찾기도 하지만 자본주의가 신용을 절대조건으로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그럴싸하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두 가지 설명을 연결해 주기도 한다. IMF의 위세 앞에 ‘투명성’과 ‘신인도’를 추궁당하며 더욱 절실한 생각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92년 유세 때 “대통령직을 걸고” 농산물개방을 막겠다고 큰소리쳤다가 취임 후 개방에 임해서는 “표현이 그랬을 뿐”이라고 꽁무니를 뺐다. IMF 측이 현직 대통령의 보증에 만족하지 않고 유력한 대선 후보들의 연대보증을 요구했다니 서양사람이라면 창피해서 낯을 못 들 일이겠지만 우리는 괜찮다. 그러기에 지금도 후보들은 큰소리 뻥뻥 치고 다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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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