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주대 부설 제주개발연구원이 실시한 ‘제주인 의식조사’ 중 눈에 띄는 항목이 하나 있다. 제주 역사의 정립을 위해 가장 연구가 긴요한 시대를 묻는 질문에 55%의 응답자가 현대사(해방 이후)를 꼽은 것이다. 일제시대를 꼽은 8%, 조선시대를 꼽은 5%에 비해 엄청난 관심의 집중을 보여준다.


이 집중의 이유를 밝혀주는 또 하나의 항목이 있다. 제주 역사의 중요한 사건 둘씩 고르라는 질문에 3분의 2가 4-3사건을 꼽은 것이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꼽은 유일한 사건이다. 4-3사건에 대한 궁금증이 응답자들의 관심을 현대사에 모아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주사람들이 4-3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놓고 말이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은 8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 전에는 ‘공산폭동’이라는 공식적 성격규정에 묶여 일체의 논의가 금지돼 있었다. 인구 20여만 중 최소 1만4천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집계돼 있는 이 사태에서 희생자를 내지 않은 집안이 제주에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런 엄청난 일에 대한 논의마저 막힌 상태에서 제주는 ‘역사를 빼앗긴 땅’이 되었다.


4-3의 전 해에(1947) 대만에서는 국민당정부가 토착세력을 탄압한 2-28사건이 있었다. 이 역시 ‘공산폭동’으로 규정돼 논의가 금지되고 희생자들의 명예조차 짓밟힌 채 몇십 년을 지냈다. 근년에 와서야 사회단체들의 주도하에 진상규명운동이 진행돼 지난 연초의 50주년을 맞아서는 기념공원이 선포되고 기념관이 세워지는 등 ‘역사 되찾기’의 성과를 거두기에 이르렀다.


국민당정권 하에서나 미군정 하에서나 당시의 공산주의자들은 통치체제를 뒤엎을 기회를 잡기에 골몰해 있었다. 이들이 불온한 민간분위기를 보고 어찌 편승할 생각을 하지 않았겠는가. 그 선동이 진행과정의 한 요인이 됐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역주민의 대다수를 공산폭도로 보고 사태의 본질을 공산폭동으로 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보아 무리다.


꼭 제주뿐만이 아니다. 해방 이후의 연구주제를 가지고 역사학계에서 첫 박사학위가 나온 것이 90년대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냉전구도의 오랜 질곡이 이제야 풀리고 있는 것이다. 내년 여름 건국 50주년에 임해서는 우리의 현대사를 우리가 떳떳이 되돌아보는 자세가 세워져야 할 것이다. 그보다 몇 달 앞서 닥치는 4-3 50주년은 역사 앞에 서는 우리 국민의 자세가 어떻게 세워질지 시금석을 제공해 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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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