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24. 10:20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감정문제가 또 불거지고 있다. 김대중 씨의 호남지역 여론조사 지지도가 계속 80%를 웃도는 상황에서 이회창 씨 측은 영남지역에서 “우리가 남이가” 소리를 꺼내고 있다. 악순환의 고리는 참으로 질기기도 하다.


공자는 어진 마음[仁]이 가까운 데서부터 번져나가는 것이라 했다. 가족을 제대로 아끼는 사람이 나아가 이웃을 아낄 줄 알고, 이웃을 아끼는 사람이 더 넓은 사회에도 사랑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아끼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전한 감정이다. 그런데 왜 지역감정이 문제일까.


투표에서 ‘선택’의 의미가 위축되는 것이 무엇보다 문제다. 김대중씨나 그가 속한 정당은 최근 십년간 호남에서 보통 80%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서 영남에서는 10% 이상의 지지를 받은 적이 없다. 호남의 대다수 유권자가 金씨 이외의 후보나 정당을 선택할 기회, 그리고 영남의 대다수 유권자가 金씨나 그의 정당을 선택할 기회가 지역감정에 의해 막혀 온 것이다.


면적과 인구가 한반도와 비슷한 영국의 경우가 지역감정 문제에 좋은 참고가 된다.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합쳐진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다. 이 ‘나라’들은 국제대회에 축구팀을 따로 내보내고 있으며 북아일랜드는 독립운동으로 심각한 내전상태를 오랫동안 겪어왔다. 우리 지역감정은 그 앞에서 명함도 못 내민다.


그런데도 영국인들은 이 분렬상을 대범하게 받아들인다. 근 3백 년만에 스코틀랜드 의회를 부활시키는 작업이 진행중이며 합병한 지 5백 년이 돼 가는 웨일스에서는 고유 웨일스어(語) 소생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북아일랜드 문제도 합리적 해결책을 찾는 노력이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지역감정 때문에 정치적 판단을 마비당하는 유권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인간사가 다 그렇듯 민주주의 역시 ‘서로 다르면서 어울리는(和而不同)’ 데 요령이 있다. ‘내 고장 아끼는 마음’으로서 지역감정은 너나없이 존중해야 한다. 유권자의 태반이 이 마음에만 얽매여 의미 있는 선택을 하지 못하는 현실이 문제다. ‘정치’가 없고 ‘통치’만 있던 시절, 유권자를 조작의 대상으로만 보던 시절의 뼈아픈 유산이다. 그래도 전번 선거보다는 지역집중도가 다소나마 떨어질까 하는 기대에서 위안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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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