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사대(事大)’를 죄악으로 보기는커녕 하나의 도덕적 이념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사대주의’를 죄악시하게 된 것은 구한말 이래 친일파와 일본세력이 한중관계를 이간시키고 조선역사를 폄하하기 위해 ‘주의’라는 말을 붙여 퍼뜨린 때문이다.


‘주의’라는 말이 나쁜 뜻으로 쓰이는 것은 하나의 가치에만 집착해 다른 가치들을 묵살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경우다. 정녕 큰 것 섬기는 데만 매달려 저 자신도 돌아볼 줄 모른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주체성 없는 사대주의가 설령 조선의 사대부(士大夫)들 사이에 만연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말류(末流)의 폐단일 뿐, 원래의 ‘事大’는 도덕적으로 건전한 이념이었다.


“맹자(孟子)” 양혜왕편(梁惠王篇)에는 “大가 小를 섬기는 것은 어질음[仁]이요, 小가 大를 섬기는 것은 지혜[智]”라 하여 ‘事大’와 ‘사소(事小)’의 두 덕목을 나란히 놓았다. 이어 “小를 섬김은 하늘을 기쁘게 함이니 천하를 지킬 것이요, 大를 섬김은 하늘을 두려워함이니 나라를 지킬 것”이라고 그 공용(功用)까지 설명했다. ‘事小’는 천자(天子)가 제후(諸侯)를 대하는 태도를, ‘事大’는 제후가 천자를 대하는 자세를 가리키며, 함께 어울려 천하(天下)질서의 틀을 이뤘다.


‘事小-事大’ 이념체계는 민주주의 원리와도 곧잘 통하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에 따라가는 것이 곧 ‘事大’의 규범이요, 그러면서도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곧 ‘事小’의 규범 아니겠는가. ‘All or Nothing!’의 극단론을 피하고 조화를 꾀하는, 대소(大小)에 관계없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가 바로 이것이다.


대통령후보 경선 이후 신한국당의 경치를 보며 ‘事小’와 ‘事大’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본다. 이회창(李會昌) 대표는 승리감에 도취해 밀어붙이려 들기보다 한껏 몸을 낮춰 경쟁자들을 포용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상대방을 깨부수기만 들려 해서는 판 자체가 날라갈 수 있다는 인식 아래 ‘事小’에 힘쓰는 모습을 보면 집권당의 민주화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많이 띈다. 李대표 주변에도 아부와 줄서기의 행태가 더러 얘깃거리를 만들고 있지만, 일부 반대자들의 ‘독자행보’가 더 가관이다. 표대결에 지고도 ‘事大’의 자세를 갖추지 못한다면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한갓 방종(放縱)일 뿐이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