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전쟁을 통해 탄생하고 성장한 나라다. 독립전쟁으로 나라를 만들었고 남북전쟁으로 산업발전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세계대전 참전을 계기로 초강대국의 자리에 올랐고 동서냉전을 통해 세계질서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이처럼 전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나라면서도 미국은 침략전쟁을 당해보지 않은 특이한 나라다. 한편으로는 전쟁을 유별나게 좋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난히 전쟁을 두려워하는 일반 미국인의 의식은 이런 상황에서 빚어진 것이다.


특히 2차대전의 경험이 미국인의 의식에 큰 작용을 했다. 선진국으로 선망해 온 유럽 여러 나라가 잿더미로 화하는 가운데 미국인들은 독특한 ‘예외주의(exceptionalism)’를 키웠다. 민주주의를 앞장서 성취한 도덕적 강국일 뿐 아니라 어떤 전쟁도 이겨낼 수 있는 물질적 강국이 미국이라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전쟁에 대한 공포심이 깊이 자리잡았다. 나치의 학살과 일본의 교쿠사이(玉碎) 등 인간의 잔학성을 겪어보았고, 런던 공습을 보며 바다도 결코 안전한 장벽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견했다. 스스로 투하한 원자폭탄의 위력을 보며 침략을 당해본 적 없는 미국 땅도 전장(戰場)이 따로 없는 현대전에서는 이제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님을 깨달았다.


전쟁에 대한 의식의 이중성이 미국인으로 하여금 현대전의 비인간화에 앞장서게 했다. ‘전쟁 억지력’이라는 명분으로 제공력과 고성능 화기 확보에 군비를 무한정 쓰는 것은 ‘미국 청년의 피’를 끔찍이 아끼는 마음 때문에 가능하다. 처절한 전투보다는 람보의 환상적 활약이 미국인의 눈길을 끈다. 전쟁을 싫어한다면서도 스스로를 ‘전쟁의 그림자 속에’ 가둬놓는 이 심리가 현대미국의 군국주의를 불러왔다고 미국 역사학자 마이클 셰리는 지적한다.


북한의 도발의지와 핵무기 보유가능성을 강조하면서 황장엽(黃長燁)씨는 근거를 묻는 기자들에게 “나쁜 쪽으로 생각하고 대비하는 편이 좋지 않느냐”는 반문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사물을 한쪽으로만 생각해서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고, 통일의 마음가짐을 키워내기 위해 좋은 쪽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양쪽을 늘 생각하되, 상황이 조금 바뀔 때마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평상심(平常心)이 필요하다.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