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아이히만은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하수인이었다. SS 간부로서 38년 비엔나에서, 그리고 이듬해에는 프라하에서 유태인 청소를 지휘했고, 42년 이후에는 수용소의 집단학살을 기획하고 관리했다. 그가 60년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요원들에게 체포돼 예루살렘에 압송되었을 때 이 ‘살인마’의 재판은 세계의 이목을 모았다. 61년 12월 이스라엘법정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62년 5월 교수형이 집행됐다.


아이히만의 재판과 처형에 대해서는 많은 글이 나왔거니와, 가장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이다. 독일 유태인 출신으로 나치 박해를 피해 41년 미국에 이주한 아렌트는 전체주의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가진 학자였다.


아렌트가 많은 유태인들을 격분시킨 논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박해 당시 유태인사회 지도층이 나치의 통제에 협조했다는 것이다. 이런 협조 없이 몇 년 안 되는 기간 동안 5백만 이상을 처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아렌트는 지적했다. 본의가 아니었더라도 ‘결과적으로’ 협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또 이 지적에 일반 유태인들이 발끈하는 것도 쉽게 이해가 가는 일이다.


또 하나의 논점은 보다 미묘한 것이었다. 아렌트는 히틀러와 아이히만을 ‘악마’가 아닌 비속한 인물들로 그렸다. 20세기는 과거와 달리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특이성이 없는 비속한 인물들이 술수만으로 권력을 쥐고 엄청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비속성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 아렌트의 관점이다. 히틀러와 스탈린을 가장 두드러진 예로 그는 꼽았다.


유태인들이 이 논점에 분노한 것은 대학살이 유태인 정체성(正體性)의 근거가 돼 있기 때문이었다. 악마적 범죄에 희생당했다는 비극성은 이스라엘의 호전적 대 아랍 정책까지도 정당화시켜 주는 시오니즘의 상징이다. 그런데 그 희생을 비속한 인간들의 비속한 범죄로 격하시키는 것을 시오니즘에 대한 모욕으로 유태인들은 받아들였다.


히틀러의 웃는 얼굴을 만들어 담은 껌 광고에 독일대사관이 항의한 배경에도 비슷한 상징성이 작용한 것 같다. 히틀러를 완벽한 악마로 규정해야만 나치즘의 죄악을 일반 독일인들로부터 절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이 광고를 봤다면 뭐라 했을까.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