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발명품으로 서양의 근대화에 큰 공헌을 한 것들이 있다. 나침반과 화약, 그리고 제지술(製紙術)이다. 이것들 없이는 대항해시대도, 근대전쟁의 발달도, 정보화시대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교섭사가들은 또 하나 중요한 중국 발명품을 지목한다. 과거(科擧)제도다. 18세기 이래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이 공무원임용시험제도를 만들어 중앙집권적 관료체계를 형성한 것 역시 중국에서 배워갔다는 것이다.


과거제는 6세기말 수(隋)나라 때 만들어져 1905년까지 1300여 년간 시행됐다. 유교국가의 관료집단 내지 지배계층을 유지-관리하는 데 핵심적인 제도였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초, 즉 10세기 중엽에 도입되어 차츰 시행이 확대된 결과 고려말까지는 국가구조의 뼈대가 되었다. 그리고 조선왕조 5백년을 통해 학술과 교육의 기본메커니즘으로 계속 작용했다.


조선 중기를 지나면서 과거제의 폐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폐단은 시험의 부정(不正)이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너무 많은 지망생이 과거 준비에 매달리는 인력낭비였다. 정약용의 과거제 개혁안에 이 문제가 비쳐져 보인다.


정약용은 각 고을 수령이 지역 유지들의 의견을 들어 과거 응시자를 선발하도록 하는 제도를 제안했다. 3년을 주기로 전국에서 2,880명을 뽑고, 여러 단계의 시험으로 합격자를 줄여나간다는 것이었다. 수만 명의 전국 선비들이 과거에만 매달려 있는 현실을 타파하려는 의지였다.


응시자의 범위는 과거제의 원죄(原罪)와도 같은 문제였다. 양반층에 의지하는 국가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문호를 좁힐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정기적인 식년시(式年試) 외에 이따금 증광시(增廣試)를 행하는 정도였지만, 양반층 확대에 따라 알성시(謁聖試), 춘당대시(春塘臺試) 등 요행이 많이 따르는 약식의 별시(別試)가 늘어나 실력 없는 선비들까지 유혹했다.


엄청난 사교육비 문제를 소비자보호원도 지적했다. 그러나 수능시험의 난이도 따위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문제의 본질 같지 않다. 전국 학생의 대다수가 하나의 길에만 몰려있다는 것이 근본문제다. 아무리 시험을 쉽게 한들 한 점 더 따기 위한 무한경쟁이 식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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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