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에서 늦도록 자식이 없어 대가 끊길까봐 양자를 들였다. 그런데 양자가 다 커서 실질적인 가장 노릇까지 하는 판에 노부부가 늦아들을 두었다.

대를 잇는 일은 어린 적자에게 돌아가게 되었지만, 부모는 늙고 적자는 어려서 집안은 양자가 꾸려갈 수밖에 없었다. 양자는 논밭을 개간하고 집을 지어 살림을 지키고 키워나갔다.

세월이 지나 장성한 적자가 가장의 책임과 권리를 넘겨받으려 할 때, 나이든 양자가 반대했다.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 세파의 경험이 많은 자기가 어른노릇을 계속해야지, 섣불리 어린 동생이 모든 책임을 맡았다가는 뜻밖의 일로 낭패를 볼 염려가 있다고 했다.

그러자 적자가 반발했다. 우리집 살림을 오랫동안 맡아왔다고는 하지만 형은 원래 다른 집에서 온 사람 아니냐, 이웃집에도 형 못지않게 조언해 줄 이들이 얼마든지 있으니 이제는 모든 사람들의 말을 똑같이 들으면서 내가 알아서 해나가겠다고 적자는 주장하며 양자를 집에서 쫓아냈다.

---------

또 한 차례 한글날을 맞으며 우리말, 우리글의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이 마음속에 떠오른다. 특히 해방 이후 한글 사랑하는 마음으로 펼쳐져 온 한글 전용운동의 성과가 뿌듯하게 느껴진다.

해방 직후 한글전용론의 적(敵)은 국한문혼용론이었다. 일제시대에 자리 잡은 국한문혼용 관습의 극복은 모든 양식있는 사람의 동의하는 바였다. 그 완급만이 논쟁의 대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국민 대다수가 혼용에 익숙해 있었을 뿐 아니라, 한자를 적어놓지 않으면 뜻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어휘체계도 미비했다. 40여 년 동안 이 문제는 많이 해소되었다. 꽤 까다로운 내용을 담은 글에도 한자 표기가 별로 필요하지 않을 만큼 한글전용은 사회의 익숙한 관행이 되어 있다.

한문이 한글보다 큰소리치던 조선시대, 한자와 한글이 대등하게 어울리던 국한문혼용 시대를 지나 우리는 한글전용 시대에 접어들어 있다. 우리 언어문화는 기나긴 속박상태에서 벗어나 이제 앞으로의 주체적 발전을 내다보고 있는 시점이라 하겠다.

----------

과연 앞으로 우리의 말글살이가 나아갈 길은 어떤 방향인가? 지금까지의 한자퇴치 노력을 더욱 강화하여 한자 교육을 없애고 한자어도 꾸준히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한자퇴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복고주의, 사대주의로 매도한다. 미래를 부정하는 복고주의, 주체성을 말살하는 사대주의는 물론 배격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그 배격이 지나쳐 자신의 전통마저 부정하거나 자신의 입지를 파괴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오랫동안 살림을 맡아온 양자가 가장의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집안의 어른으로서 도움이 될 만한 일이 많을 것이다. 가장을 맡아야 할 적자를 억누르는 일은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그를 무조건 쫓아내는 것만이 집안 잘 되는 길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한자어의 과도한 사용이 정리되고 새로운 한자어의 사용이 억제된 해방 이후, 서양말 외래어의 홍수가 닥쳐들고 있다. 한자에 오랫동안 의존해온 조어력이 마비된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

문화가 유기적인 생명체라는 사실을 한자배척론자들은 흔히 간과하는 것 같다. 우리 몸이 생명체로서 살아나가기 위해 뇌와 장기만 있으면 되는가? 아니다. 근육도 필요하고, 피부도 모발도 있어야 한다.

순수한 '우리것'의 알맹이만을 고집할 때, 모든 껍데기와 울타리를 거부할 때, 햇빛과 바람과 눈비가 그 알맹이를 언제나 좋게만 대해줄 것인가? '우리것'의 알맹이가 그런 식의 순수한 독립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50년간의 경험으로 확인되었다.

모든 관계를 조화시켜 그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진정한 독립이고 주체성이다. 깨끗하기만 해서 훌륭한 문화가 되지 못한다. 힘있고 풍성한 문화라야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한자가 우리의 글(문자)임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한글 창제 이후 그 역할이 서서히 줄어들어 지금은 표기의 전면에서 모습까지 감추고 있지만, 아직도 한자어의 배후에서 묵묵히 자기 몫을 해내고 있다.

세계화 시대의 거친 풍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전통의 밧줄을 놓아버리면 이 풍파 속에 실종되고 말 것이다. 든든한 밧줄로 몸을 감고 있는 자들만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 나아가 이웃들에게도 도움을 베풀 수 있는 그런 시대다. 몸을 묶고 있던 밧줄을 푼 뒤에도 그 밧줄을 내던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주체성이다.

'미국인의 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틀러의 웃음 (97. 6. 13)  (2) 2011.12.02
교육개혁의 끝없는 길 (97. 6. 6)  (0) 2011.12.01
무한경쟁의 시험제도 (97. 5. 30)  (2) 2011.11.30
白衣從軍 (97. 5. 16)  (1) 2011.11.30
忠臣과 佞臣 (97. 5. 9)  (0) 2011.11.29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