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唐) 태종(太宗)이 즉위 초에 관리의 부패를 걱정해 특별감찰을 벌인 일이 있다. 사람을 시켜 짐짓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게 하고 이를 받은 자들을 옭아넣었으니, 말하자면 함정감찰이라 할 것이다.


이들을 처벌하려 하자 민부상서(民部尙書) 배구(裵矩)가 반대하고 나섰다. 국가질서의 근본은 군신(君臣)간의 믿음이고, 이에 비해 관리들의 소소한 비리(非理)는 지엽일 뿐인데, 이제 비리를 다스리기 위해 임금이 신하를 속이는 방법을 쓴다면 이는 치국(治國)의 본말을 뒤집는 일이라 한 것이다. 태종은 이 반대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잡아들였던 관리들을 훈계방면하였다 한다.


함정수사의 의혹으로 국가기관의 공신력이 걸핏하면 도마 위에 오르는 우리 실정에서 배구의 논점은 좋은 참고가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배구의 경력이다. 그는 원래 수(隋) 양제(煬帝)에게 총애받다가 양제가 죽은 후 태종에게 넘어온 인물이다.


양제의 실정(失政) 가운데 손꼽히는 한 가지가 지나치게 적극적인 대외정책이었다. 고구려 원정이 그 대표적인 예다. 배구는 그 대외정책을 부추긴 인물로 지목되었다. 서역(西域) 사정에 밝아 “서역도기(西域圖記)”를 남기는 등 중외관계에 업적을 남겼지만, 당시에는 양제의 총애를 업고 국력을 고갈시켜 수나라의 멸망을 앞당겼다는 비난을 받았다.


사마광(司馬光)은 <자치통감(資治通鑑)>에 배구의 사적을 적으며 이렇게 논했다. “임금이 밝으면 신하가 곧다고 옛사람들이 말했다. 배구가 수나라에 영신이었다가 당나라에 충신이 된 것은 그 성질이 바뀌어서가 아니다. 임금이 자기 허물 얘기 듣기를 싫어하면 충신도 영신이 되는 것이요, 직언(直言) 듣기를 즐겨하면 영신도 충신이 되는 것이다. 임금이 기둥이라면 신하는 그 그림자이니, 기둥이 움직이면 그림자도 따른다는 것을 이로써 알 수 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도 국가와 사회에 보탬이 되기보다 해악이 되는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근래 이어지는 사태 속에서 본다. “성공하면 공신(功臣)이요, 실패하면 역적(逆賊)”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는지 모른다. 개개인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기에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혹시 이 사회가 충신도 영신으로 만드는 분위기를 가진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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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