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용의 눈물’에 얼마전 정도전이 ‘백의종군’을 선언하는 대목이 나왔다. 개인의 야심을 버림으로써 정치적 견제를 벗어나 정책추진을 원활하게 한다는 뜻이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이행은 단순한 왕조교체가 아니라 국가구조의 혁명적 변화였다. 귀족-대지주 중심에서 사대부-중소지주 중심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 변화를 기획하고 집행한 주역이 정도전이었다. 정몽주를 쳐죽인 이방원의 공로에 비길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이성계조차 정도전의 이상 실현에 이용된 ‘얼굴마담’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정도전은 서얼 출신으로 고려의 귀족주의 아래서는 빛을 못 볼 인물이었다. 그러나 공민왕 조정의 개혁분위기 속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중용되었다. 공민왕이 죽은 후(1375) 관직에서 쫓겨나 각지를 유랑하다가 동북면으로 이성계를 찾아갔다(1383). 여기서 49세의 실력자와 47세의 낙백서생 사이에 의기가 투합함으로써 필생의 협력관계가 맺어진다.


이성계의 후견으로 관직에 복귀하고 뜻을 펼 기회를 잡은 정도전은 매사에 이성계를 앞세웠고, 이것이 결국 이성계를 왕으로 한 조선 개국(1392)에 이른다. 사실 정도전의 백의종군은 조선 개국 전부터 시작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정도전은 이방원 일파와의 갈등을 넘어서기 위해 마음을 비웠다는 뜻의 백의종군을 표명했으나 결국 죽임을 당했다(1398). 실록 등 기록에는 정도전 측이 먼저 도발하다가 반격을 당했다고 되어 있지만, 이는 권력을 쥔 이방원 측이 자기네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후에 윤색한 것이기 쉽다.


보다 중요한 것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등 저술에 보이는 정도전의 통치이념이 조선왕조의 국가원리로 계속 채용되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몸은 죽임을 당해도 그 뜻은 살아난 셈이다. 현실권력에 집착하지 않는 백의종군의 정신 덕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다가오는 대선에 지망생은 많아도 경륜은 없다는 지적이 들린다. 참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한 큰 뜻이 있다면 청와대를 향한 비생산적 경쟁에서 발을 빼고 뜻 자체에만 집중하는 발상도 있을 법하다. 뜻을 그만큼 소중히 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대통령 직함이 없더라도 국민이 따를텐데.

Posted by 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