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일기(狂人日記, 1918)는 루쉰(魯迅)의 첫 작품이자 중국최초의 서양식 소설이기도 하다. 이 단편에서 루쉰은 유교문명을 식인(食人)의 문명으로 매도하며 전통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을 폈다.


루쉰의 통렬한 전통비판은 당대 지식인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식인의 예를 되짚어보면 석연치 않은 것이 많다. 삼국지에도 나오는 얘기지만, 곤경에 빠진 유비(劉備)에게 어느 사냥꾼이 아내의 고기를 바쳤다는 얘기를 보자. 상황의 극한성과 정성의 지극함을 강조하기 위해 사람고기를 등장시킨 것이니, 이것은 사람고기 먹는 일이 당시에 비정상적인 일이었음을 보여주는 얘기다. 다른 경우도 대개 극진한 효성이나 충성을 그리기 위해 수사적(修辭的)으로 사람고기가 나온 것을 루쉰은 마치 식인이 중국의 전통인 것처럼 침소봉대한 것이라 하겠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같은 종끼리의 식육은 흔한 일이 아니다. 숫사자가 어린 새끼가 달린 암사자를 짝으로 취할 때 새끼를 잡아먹는 일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미사자가 자기 새끼를 빨리 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개미 중에는 식량이 부족할 때 새끼개미들을 잡아먹으며 기근을 버텨내는 종류가 있다고 한다.


유럽문명이 세계를 정복하기 전까지 세계 구석구석에 식인의 풍속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마트라 섬의 바탁 족(族)은 네델란드 인의 정복 때까지 저자에서 인육을 사고 팔았다고 한다. 멜라네시아 어(語)에는 사람을 ‘긴 돼지’라 부르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개의 식인풍속은 주술(呪術)이나 의식(儀式)의 의미를 가졌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오스트렐리아 원주민 중에는 죽은 친척의 고기를 먹음으로써 망자에 대한 애정을 표하는 풍속이 있었고, 마오리 족은 죽인 적의 몸을 먹으면 그 복수능력이 없어진다고 믿기도 했다고 한다.


인육을 식량으로 삼는 경우가 거의 없었음에도 서양인들은 야만의 상징으로 식인의 풍속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백인의 짐’(White Man's Burden) 선전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루쉰 같은 계몽주의자들은 이 선전을 자진해서 받아들였다. 요즘 북의 식량사태를 두고 “사람고기를 먹는 실정” 운운 하는 얘기는 누구의 짐을 선전하기 위해 누가 퍼뜨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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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천